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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ug 13. 2021

책방을 위해

오늘 어이가 없던 일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오전에 올림픽을 봤다. 여자배구의 선전을 기대하며 초조하게 지켜봤다. 접전 끝에 승리를 따냈다. 명승부였다. 다행히 손님이 없어 끊김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2시에 예정대로 미팅을 가졌다. 이 미팅은 약간 어이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불쾌한 일은 없었다. 대체로 사람들이 말하고 나는 듣고 있었기 때문에 불쾌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 중간에 '책방을 위해서'라는 말은 조금은 거슬렸었다. 어이가 없다며 투정을 부려 불씨를 키울 수도 있었지만 지나가는 말이었고 나만 못 들은 척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가 잠깐이나마 '책방을 위해'라는 말에 각이 섰던 것은 이 사람들에게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주민공모사업이라던가 어떤 보고서 작성을 위해 미팅을 제안하는 사람들은 우리 마을 '책방을 위해'라는 말을 정해두고 그들의 힘듦을 가시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오기가 나곤 한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죠?" 하면 "아닌데요! 코로나 전부터 힘들었거든요!"라던가 "책방 운영은 어렵죠?" 하면 눈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아니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책이 팔리면 기분 좋습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그렇쵸 뭐."하고 넘기고 만다. '책방을 위해'라고 말하는 열에 아홉은 그저 책을 좋아할 뿐, 책을 사지는 안을 거라는 믿음이 깨지는 법은 없었다. 책방을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을 사는 것이라는 걸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미팅이 마무리될 즈음 우리 동네에 이런 책방이 있으니 정말 좋아요라고 했고, 문을 나서며 다음에 또 온다고 했다. 말이나마 다음에는 책 사러 올게요라고 했으면 조금 더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가니 또 혼자 있는 시간이 됐다. 유튜브를 켜고 강아지 미용하는 영상을 1시간 이상 본 것 같다. 조회수가 십이만을 넘는 영상이었다. 나 말고도 십이만이 넘는 사람들이 강아지 미용하는 영상을 보고 마음의 이완을 느꼈을 것이다. 책방을 비우고 잠깐 산책을 하고 왔다. 그 사이 지인이 와 책 3권을 고르고 음료를 주문했다. 모히또를 주문했는데 블루베리 스무디가 맛있다고 하니 그럼 그거로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잠깐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초창기 책방 지구 불시착에 대해 이야기했다. 슬슬 집에 가야겠다고  짐을 추스를 때쯤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제로 웨이스트 대나무 칫솔이라도 사주려고 했더니 "사장님 그거 지난번에 주셨잖아요!"라고 한다. 우린 어이가 없다는 듯 다정한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자꾸만 대단한 사업인 양 회의니 미팅이니 하면서 책방을 위한다는 말은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반면 이런 지인들 때문에 책방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엔 올림픽 야구 한일전이 있다. 야구도 배구처럼 이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무 좋을 텐데. 책을 판 것처럼 기쁘진 안겠지만.






illruwa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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