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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l 28. 2022

이국적인것에 관하여

김택돌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일기]를 읽으며 솔깃했던 건 바베이도스를 소개하는 전단지었다. 그리고 등장하는 ‘이국적인 것에 관하여’라는 말은 문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었다. 짧고 깊고, 강렬하게 ‘이국적.’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앞머리를 헝클었다. 바람은 그대로 머릿속을 관통해 어떤 이미지로 안내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에메랄드 비치, 야자수, 낮달,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긴긴 휴가, 구릿빛 피부.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가져오는 현지보다 더 이국적이고 마는 실현 가능성 제로의 공간은 이국적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충분히 갈망하게 되었다. 상상에서 깨어나니 눈에 보이는 건 ‘노원구’ 힐링 도시 노원이라는 문구가 너무나도 가소롭고 하찮아 보인다. 

사실 나는 깨나 오랜 시간 이국적인 것에 매료되어있었다. 중동 노동자였던 작은 아버지로부터 귀국선물로 받은 연필에는 저머니라는 영어 단어가 있었다. 통념 외제라고 불리는 것들에는 품격이 있다고 믿었던 시기였다. 연필 한 자루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대주의라는 말에 잠재했던 이국 병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국 병은 계속되어 외국의 포스터와 디자인을 좋아했고 요하네스버그라든가 포틀랜드, 자비에 돌란이란 이름만 있는 것들도 동경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루끼의 소설에 한 참 졌어 있을 때는 “쳇 또 독일이야”라는 첫 문장에서 독일을 동경하기도 했고, 하루끼가 무수히 우려먹는 비틀즈와 재즈 LP를 좋아했다. 특히 서전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라는 노래를 좋아하기보다 서전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라고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까지 했다. 

지난 해 헐렁한 티셔츠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하루끼 T]라는 책이 나왔다. 뉴욕과 보스턴,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에서 우연히, 가볍게, 어쩌다가 하루끼의 티셔츠가 된 옷들과 그에 따른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읽었다. 하루끼의 문장보다 하루끼처럼 외국에서 사 온 티셔츠가 필요함을 느낄 정도로 이상하게 책을 읽은 나는 정말 이국적인 티셔츠 하나쯤 가지고 싶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검은 색티에는 붉은 글씨로 ‘VIDEO GAME KIDS’라는영어가 쓰여있긴 하다. 하지만 이 티를 이국적이지 않다.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가 똑같은 공정으로 서울과 오하이오주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나는 오하이오주에서 만든 티셔츠 한 장쯤 갖고 싶은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by 김택돌

인스타그램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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