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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08. 2022

도시락소울파미래도

김택돌


냉장고 닫는 소리가 들린다. 봉지를 뜯는다. 싱크대에서 물이 틀어지면 그건 냉동 새우를 꺼내 해동하는 중이란 뜻이다. 오늘 도시락 메뉴는 새우다. 도마를 치는 소리가 가볍고 경쾌하다. 대파가 아닐지. 냄비 뚜껑 닫히는 소리가 얇고 청아하다. 맑은국이다. 내가 좋아하는 북엇국 일 가능성이 높다. 기름이 이글거린다. 프라이팬에서 기름이 튈 정도로 무언가 튀겨지고 있다. 강불이다. 계란 후라이는 아닌 것 같다. 어젯밤 물 마시다 본 단단히 밀봉된 양념 불고기가 생각났다. 그렇다면 불고기다. 아내는 고기를 사 오면 종류에 따라서 소분하기도 하고 양념을 재워 놓기도 한다. 랩으로 꽁꽁 싸매서 냉동고에 넣어둔다. 요리를 하기 전날부터 꺼내어 자연해동을 한다.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쌀을 씻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이 몇 번이나 열렸다가 닫히면 아침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학교에 먼저 가는 순서대로 밥을 먹는다. 큰아이가 먹고 학교에 가면 작은 아이 차례이다. 아내는 마치 안 자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짧고 나즈막한 외마디로 나를 깨운다. “이제 일어나” 시간은 7시. 이불 개고 이를 닦고 세면하고 나오면 아침 식사가 준비돼 있다. 미역국이다. 나는 매번 틀린다. 아내는 도시락 두 개를 보온 가방에 담아 건네면서 몇가지 지시를 덧붙인다. 건성으로 듣고 도시락을 받아 가방에 넣으면 비어있던 가방은 도시락만으로 꽉 찬다. 무겁다. 가방을 메고 한 시간 거리를 걸어서 출근한다. 어깨에 묵직함이 전해 온다. 오늘 도시락은 새우가 아니라 김밥이었다. 또 틀렸다. 



나는 조그만 동네 책방을 운영한다. 6년 전에는 무역업을 했지만 사업은 불황을 견디지 못했다. 받아야 할 돈은 받지 못하고 빌린 돈은 액수를 불려 늘어나고 있었다. 결국 사업을 포기하고 사무실이 있던 자리에 책방을 열었다. 사무실은 면책이나 파산을 처리하는 법무사가 즐비한 2층 복도 끝 금고 같은 철문 안에 있었다. 다시 말해 이동 인구가 제로에 가까운 사무실에 가게를 차린 셈이다. 손님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어쩌다 가게 문이 열리면 손님과 눈도 마주치기 전, 인기척이란 것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러면 손님도 덩달아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인사하는 게 책방에 들어오는 루틴인 것처럼 돼버렸다. 그런 곳에서 3년을 버텼고 그 후로는 운이 좋게 마을 카페 안으로 이사해 4년을 맞이하고 있다. 시골 산속에 숨어 있어도, 도시 대로변에 있어도 책방은 원래 손님이 많은 곳이 아니다. 책방은 기다리기 위해 존재하고 막연함 기다림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체력도 필요하다. 해가 기우는 모양을 보기만 해도 책 표지에 쌓이는 먼지만 쓸어내도, 시간이 되면 허기가 지는 곳이 책방이다. 아내의 도시락을 먹을 시간은 하루 두 번씩 꼬박꼬박 찾아온다. 

도시락은 김밥과 무생채, 그리고 만두다. 그제야 아내가 도시락을 건네 주며 한 말이 떠오른다. “김밥은 서늘한 곳에 꺼내 두고, 무생채는 냉장고에 바로 넣고 만두는 4개씩 에어프라이에 2분 돌려서 먹어. 김밥 손가락으로 먹지 말고!” 아내는 어떤 음식이든 영양과 정성, 식사 예절을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에 나는 모든 식사 시간을 속도전처럼 생각한다. 오직 해치우는 데 급급하다. 맛을 느끼는 것에 인색하다. 만두도 그냥 먹었고 김밥도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무생채는 꺼내지도 않았다. 맛있는지 맛없는지도 모르겠다. 배가 어느 정도 차오르면 뚜껑을 닫았다. 손님이 들어오기 전에 식사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핑계도 되지 않았다. 나는 도시락을 먹지 않고 오래도록 바라볼 때가 있다. 내게 하루 두 끼의 도시락을 먹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울컥하기도 여러 번 있었다.




아내와의 대화는 가세가 기울던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줄었다. 나는 가급적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아내는 한숨이 늘었고 나는 그게 보기 싫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면 누웠다. 아내도 그게 싫었을 것이다. 아내는 책방에서 더 잘 웃고 말이 많은 것을 알지만 탓하지는 않았다. 책방에 보내는 아내의 관심은 오직 도시락뿐이었다. 아내의 도시락은 점점 화려해졌다. 책방 단골은 화려한 도시락을 금방 알아본다. 창필은 샐러드에 들어간 옥수수 알갱이를 손에 들고 통조림도 아니고 일일이 손으로 뜯은 거라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통조림은 칼로 잘라서 절단면이 생긴다는 것이다. 수잔은 아내의 샌드위치를 먹고 한 입만 먹으려고 했는데 다 먹어버렸다고 했다. 선옥쌤은 아내의 김밥을 먹을 때마다 앗싸! 하며 아내에게 잘하라고 했다. 그래야 김밥을 뺏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아내에게 그런 말을 전하면 맛은 좋대? 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표현은 자제하지만 좋아하는 눈치다. 아내는 언제부턴가 책방 단골들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오늘 창필이 와? 수잔은? 선옥쌤도? 하며 묻는다. 그럴 때마다 오랜만에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낀다.


한 번은 아주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생겼다. 그 문제는 바로 도시락 중단으로 이어졌다. 나는 은근히 이때다 싶었다. 빵과 라면을 먹고 떡볶이와 과자를 먹었다. 그런데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배고픔을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알았다. 하루를 견디는 힘은 양이 아니었다. 그간 아내의 도시락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내는 도시락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힘내”라며.


책방에 또 한 번 봄이 찾아왔다. 나는 유칼립투스와 애플민트를 사 와 볕이 지나가는 경로에 올려 놓았다. 그 모습이 좋다. 여린 화초가 볕을 맛나게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힘내”라고 말하고 나니 어느새 도시락 시간이 찾아 왔다. 책방에는 좋은 시와 소설이 즐비하다. 가끔은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도시락을 건네주는 아내의 말보다 못하더라.


“오이지는 냉장고에 넣고 돈가스는 에어프라이, 밥은 꼭 레인지에 돌려서 따뜻하게 먹어.”



오뚜기 푸드에세이 공모전 탈락 에세이





by 김택돌

instagram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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