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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Oct 20. 2022

하루끼는 불가능
하루끼 처럼은 가능

김택돌




하루끼는 글을 잘 쓴다. 독특한 문장으로 끈적하게 끌고 가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걸 있는 것처럼 쓰기도 한다. 말하는 고양이가 나오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늙은 고양이를 소재로 쓴 책도 나는 읽었다. 고가도로가 소설에 나오면 소설 밖에서 보이는 그저 흔한 고가도로도 한 번 더 보게 된다. 달, 공중전화, 그림자가 그랬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또 독일이군” 하는 문장이 괜히 좋고 부러웠다. 나는 특히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 원더랜드를 좋아했다. 사무실같이 넓은 엘리베이터를 상상하고, 완전한 어둠과 그곳에서의 추격전을 눈감고 그려보기도 했다. 브래인워시, 셔플링, 기호사와 공장 같은 단어를 척척 만들어내는 솜씨에 매료된 것일지도 모른다. 1Q84 3부를 다 읽고 나는 하루끼 책을 인제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이유를 못 대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렇게 말하는 게 멋있을 거로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도 하루끼의 영향일 수도 있다. 하루끼의 소설은 좋다. 하지만 그의 글이 다 좋은 건 아녔다. 예를 들면 그가 쓰는 거의 모든 종류의 에세이는 별로다. 내가 하루끼를 좋아하는 건 진짜 다른 영역에서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마라톤을 하고, ちょっと贅沢なビールキリン맥주를 잘 마신다. 많은 티셔츠를 가지고 있으며, 영어도 잘해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외국에서 몇 달간 혹은 몇 년간 살다 올 수도 있다. 돈도 벌 만큼 벌어서 고장 난 맥 같은 건 버리고 더 좋은 성능의 맥을 새로 장만할 수 있을 것이다. 재즈에 대해서도 팝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다. 유튜브에는 하루끼 관련된 링크도 넘쳐난다. 하루끼의 선곡을 하루 종일 들은 적도 있다. 서전페퍼스론리하츠클럽벤드라는 비틀즈의 노래를 하루끼를 통해 알았다. 나는 노래 서전페퍼스론리하츠클럽벤드보다 서전페퍼스론리하츠클럽벤드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아몬드 봉봉이나 지구불시착처럼 말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광팬으로 오래전부터 응원하는 팀이 있다는 것도 부러울 따름이다. 몇 해 전부터 응원하는 야구팀을 정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프로야구팀의 수도 파악하지 못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겨우 익숙해 지려 하면 은퇴 기사가 나오는 기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부족하다. 예를 들면 본질을 좋아하는 뚝심 같은 게 없다. 귀가 얇고 눈치를 본다. 글은 어쩌지는 못한다고 하더래도 취향까지 완패라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하루끼의 취향은 거의 세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계속 새로운 취향의 책이 나온다. 대단하고 대단하고 부럽다. 


얼마 전 생일이었다. 감사하게도 아기자기한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 선물 중 하나가 오늘 도착했다. 메이드 인 프랑스. 화려한 틴케이스에 비누가 들어있다. 난 비누에는 관심조차 없지만, 틴케이스는 너무 좋았다. 보내준 사람도 그걸 아는지 비누는 사모님 주고 틴케이스만 사장님 가져요.라고 문자를 보내줬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틴케이스 말고도 난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 아몬드 봉봉이라던가 푸딩, 또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아기자기한 것들이 좋다. 오늘 책방에 마을 신문 기자가 왔다. 모니터 앞에 가지런히 놓인 조개껍데기를 보고 “이런 건 어디에 쓰는 거예요?”하고 물었다. 나는 그냥 놓고 보는 거죠. 라고 답했다. 기자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보였는데 그때 나는 기분이 좋았다. 제법 하루끼처럼.





by 김택돌

instagram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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