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돌
우리는 수요일마다 모이는 사람이다. 목적은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 사정에 따라 일곱이 모이기도 하고 여덟이 모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셋. 시월 셋째 주, 왜인지 딴짓하고 싶어서 자꾸만 말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분위기가 어색하다. 오늘은 종일 손님이 없었다.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말주변은 분위기를 심하게 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닌지, 조금 전 라면을 먹은 게 문제일 수도 있고, 컴퓨터 주변에 잡스러운 물건이 많이 늘어져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스산한 날씨 탓으로 해두자. 가만히 돌아보니 오늘 유난히 문의가 많았다. 두 가지 정도 중요한 질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네 명 정도의 문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가지 문의는 정말 답하기 싫었지만, 아내의 요구였으므로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테이크아웃 손님이 3명 정도 있었고 구경만 하다 간 손님이 4명, 자리에 잠깐 앉았다간 간 지인이 둘 있었다. 커피를 9잔 정도 내렸는데 손님이 마신 건 5잔이고 나머지는 내가 마셨다. 미하가 테이블 위에 있던 계란을 집어 들고 날계란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내기를 했다. 릴라가 부추겼다. 즉석떡볶이를 걸었다. 나는 테이블에 계란을 내려쳤다.
평소보다 한 시간 먼저 불을 끄고 나왔다. 즉석떡볶이를 위해 나왔지만, 누구도 떡볶이에는 관심이 없었고, 걷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릴라는 평소와 다르게 시간을 보내는 법이 익숙하지 않은지 자꾸만 헛웃음만 쳤다. 미하는 아이패드를 꼭 안고 걸었다. 나는 뱃속의 라면이 거슬렸다.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것 치고 계속 배부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떡볶이집이 다가온다. 우린 그대로 떡볶이집을 지나 걸었다.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다는 건 이런건가? 하늘에 달이 두 개 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날이지만 그것조차 관심이 없다는 듯 걸었다. 목적지를 두지 않으면 계속 걸을 것만 같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 다이소 가서 아무거나 하나씩 살까요?” 릴라가 또 웃었다. 미하는 아무 공감 없이 그러자고 했다. 마침 살 게 있었다고 한다.
다이소에서의 쇼핑은 간결했다. 나는 릴라와 미하에게 줄 하찮은 선물을 찾았다. 미하는 미리부터 약속된 물건을 사는 것처럼 물건을 찾아 다녔다. 미하의 물건 중에 하나는 강력 본드였는데 나는 그거는 뭐에 쓸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맘은 없었다. 릴라는 뭘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주 간결하게 셀프 계산기 앞에서 정산을 마치고 백팩에 담았다. 릴라는 약간 추워보였다. 백팩이 작은 체구에 비해 커 보였고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미하의 두터운 후드 집업은 추위로부터 안전해 보였다. 후드를 꼭 눌러 쓰고, 왼손은 아이패드의 안전밸트라도 된 것처럼 단단히 고정하고 걸었다. 나는 포켓 속에 핫팩이 아직 열을 품고 있음을 확인하며 걸었다. 오는 길에 채권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게 뭐든 아무 관심도 없었다. 아무도 달의 위치는 확인하지 않았다.
by 김택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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