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맛집
박하경 여행기는 최근 알게 된 드라마다. 직장에서의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박하경은 생각한다. ‘아~ 사라지고 싶을 때.’ 그러면 다음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장면이다.
5월이 끝나는 어느 날 나는 박하경을 흉내 내기로 했다. 3100번 광역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유명하기로 유명한 강남이지만 나에게는 낯설기만 한 곳이다. 보이는 것마다 높고, 깨끗하고 새롭다. 움직이는 사물이 많고 빠르다. 이런 경우에는 동체 시력에 에너지가 몰리기 때문에 허기가 쉽게 찾아온다. 마침, 근처에 동태찌개 맛집이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동태찌개를 먹을 확률은 높지 않다. 동태찌개 먹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막상 찾아가는 가게는 냉면, 칼국수, 수제비를 하는 식당이다. 식사를 약속한 사람과 만나면 그 사람은 나에게 “동태찌개 먹고 싶었지?”하고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러면 난 끝내 거부하고 냉면을 먹는다. 그러고 하는 말이 동태찌개를 먹으면, 동태찌개 먹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잖아! 라고 말하는 것이 예약된 수순이다. 그러나 오늘은 동태찌개를 먹을 생각이다.
근처에 일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만 좋다면 말이지 잠깐 나와서 밥 먹지 않을래?> 답장은 의외로 빨리 왔다. <밥 생각 없는데> 사실 그 친구와 나는 이런 일로 연락할 사이는 아니다. 독립 출판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3월 마켓 때 옆 부스에서 책을 궁금해하는 손님들에게 차근하게 설명하는 목소리가 좋아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와 친해지는 건 별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헤어지며 조근조근한 눈빛으로 강남에 오면 연락해 밥 먹자”라며 말을 꺼낸 건 그였다. 대한민국에서 허세로 유명한 말을 나만 진심으로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 문자에는 적당한 이모티콘 하나를 던지고 후회하듯 스마트폰의 화면을 닫았다. 갑자기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부끄러움 반, 에라 모르겠다의 기분 반이었다.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강남은 높은 빌딩과 쭉쭉 뻗은 대로만 있을지 알았는데 골목 골목에는 지붕이 낮을 주택도 있었고 언덕도 많았다. 태양의 고도는 점점 높아져 그림자를 더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제 적당한 카페나 들어갈 생각을 했는데 그 친구로 부터 문자가 왔다. <어디야? 맛있는 디저트카페 있는데 거기 갈까?>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오케이 하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약속을 잡았다. 카페는 이름부터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라는 홍상수 필름의 분위기였다. 조금 불편해 보이는 원목의자가 옹기 종기 모여 있고, 외국에서 찍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허회경의 <아무것도 상관없어>가 진공관 오디오의 앰프를 타고 흘러나왔다. 노래라곤 적극적으로 불러 본 적도 없던 내가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요즘은 도시가 좋다던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또 그 이유가 사람들이 배경 역할로 스스로 지워지기를 원한다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그려있는 잡지를 펼쳤다. 친구는 결국 오지 않았다.
by 택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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