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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l 16. 2023

주머니 속의 장르 3

아는 사람만 아는 행복



내가 도쿄 신오쿠보에서 있을 때 일이다. 25년 전쯤 됐다.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다. 퓨전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할 때였는데, 새벽 2시가 업무 마감이었다. 밤하늘이 맑아서 도시 불빛이 닿지 않아도 만월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진했다. 일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혹시 MD라고 알까? MP3로 몰락한 일본의 광학 기술로 만든 미니 디스크 플레이어다. 비싸다. MD 플레이어로 사잔 올스타즈 싱글 <러브어페어>를 들었다. 명반이었다. 난 지금도 그 노래만 들으며 그시절을 생각하곤 한다. 고개를 흔들고 흥얼거리기에 그것보다 좋은 노래는 흔하지 않다. 그 시절 쿠와타켄스케 완전 끝내줬다. 히트곡이 너무 많아서 베스트 앨범만도 수도 없었다. 아무튼 그날 밤, 사쿠라가 엄청난 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미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는 시기다. 하나미? 하나미는 일본 문화 중에서도 일본인들이 최고로 꼽는 문화이기도 하다. 벚꽃에 유난이라니. 그냥 꽃놀이다. 내리막길을 자전거로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 사쿠라후유끼가 장관이었다. 새벽바람에 기분 좋게 사잔을 들으면서 내리막을 달리는 기분은 최고다. 사쿠라후유끼, 벚꽃 날리는 모양을 후유끼, 눈발에 비유해 그렇게 말하는데 정말 끝내주는 거다. 마침 월급날이었다. 시급이 950엔이었는데 그 시절 950엔이면 우리 돈으로 1,100원 정도다. 내가 항상 일을 제일 많이 했다. 하루 열서너 시간을 일 했으니까. 거의 쉬는 날도 없었다. 공부하러 가서 공부보다 일을 많이 해야 학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모은 월급이 고스란히 학자금으로 나가서 난 항상 가난했다. 주머니에 170엔, 많을 땐 270엔이 전부였다. 그래서 점심 먹을 땐 학교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밥 사주곤 했다. 참, 염치도 없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신세 지고 사는 거는 다르지 않다.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때, 뭔가 행복에 겨워 있을 때이다. 장기적인 행복, 그런거말고, 순간적인 행복. 잠깐의 충만감 그런 느낌. 그럴 때는 집에 가는 길에 콘비니 들려서, 아 콘비니는 편의점이다. 일본은 편의점이 정말 많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길가에 24시간 편의점이 있는데, 밤에는 편의점 불빛에 의지하게 된다. 일정부문 치안에도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건도 많고 깨끗하다. 문구도 있는데 무지루시도 입점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 무인양품이 무지루시다. 그래서 콘비니에 가면 이것저것 구경도 하다가 집에 들어가는데, 월급날이면 꼭 사는 게 있다. 바로 뿌린이다! 뿌린은 푸딩이다. 내가 푸딩 좋아하는 거 알까? 푸딩 맛집이라고 한 푸딩 많이 먹어봤는데 난 그 편의점에서 파는 푸딩이 그렇게 좋더라. 기분 탓이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월급도 받았고, 봄바람도 적당하고, 사잔 올스타즈 러브어페어를 듣고 있으니 말이다. 더할 나위 없는 그런 청춘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난 티비를 제일 먼저 튼다. 이유는 무서워서다. 무서운 거 딱 질색이다. 집에 들어가서 문 닫는 순간 손잡이가 제일 무섭다. 불을 훤하게 켜고 티비소리에 적응이 되면 일단 안심한다. 공포 해제 그런 거다. 푸딩은 잠시 냉장고에 두고, 샤워 하고 나와서 티비 보면서 푸딩을 한 입 뜬다. 캬~, 남들은 샤워 후 맥주라고 하는데,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행복! 그런.




by 택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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