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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an 22. 2019

요즘 잠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요즘 잠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눈치가 빠른 와이프는 출근 시간이 아무리 다가온다 해도 깨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버스를 타면서 졸고, 카페 오픈 후 커피를 앞에 두고도 잠이 찾아옵니다. 예전에 바이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잠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몇 날을 일만 해 피곤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꼭 피곤이 이유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휴일 대낮부터 이불을 편다고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요를 깔고 그 위에 전기매트를, 그 위에 얇은 요를 올려 3중 바닥을 만든 후, 두툼한 무게가 느껴지는 담요를 목까지 끌어 올리고, 다시 한번 자세를 고쳐 눕습니다. 전기장판에 온도를 올리는 순간 나의 선택은 옳다고 느껴집니다. 그렇게 누워서 잡생각을 해도 좋고, 스마트 폰을 해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순간은 길지 못하고 이내 스르르 잠이 찾아옵니다. 오늘 아침엔 잠을 너무 자 어이가 없는 얼굴로 아들에게 잠을 자도 자도 졸린다고 토로를 했습니다. 아들은 나보다 어른스럽게 잠은 원래 그런 건가 봐요. 저도 그래요.라며 응대했습니다. 문제는 너무 누워있으면 몸이 아파져 오는 겁니다. 일어나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잠이라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또 두러 누워버립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잠이 눈두덩이에 내려앉습니다. 이런 순간 기왕 잠이 오는 거 달콤하게 자자며 잠에 못 이기는 척 또 자게 되는 것입니다. 겨우겨우 일어나 출근하며 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피천득 선생님의 잠이 생각나 글을 꺼내 읽었습니다. 



잠을 방해하는 큰 원인은 욕심이다.  물욕,  권세욕,  애욕,  거기에 따르는 질투,  모략 이런 것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가 많다.  거지는 한국은행 돌층계에서도 잠을 잘 수가 있다.  나는 면화를 실은 트럭 위에서 네 활개를 벌리고 자는 인부들을 본 일이 있다.  그때 바로 그 뒤에는 고급 자가용 차가 가고 있었다.  그 차 속에는 불면증에 걸린 핼쓱한 부정 축재자의 얼굴이 있었다.


잠은 근심을 잊게 하고 아픔을 잊게 하고,  자는 동안만이라도 슬픔을 잊게 한다.  잠이 없었던들 우리는 모두 졍신 병자가 되었을 것이다.  전문 의사의 말을 들으면 정신병에 가장 효과가 있는 요법은 잠을 재우는 것이라고 한다.  "너의 슬픔 그 무엇이든지 잠 속에 스러질 것이다."  그리고 잠은 서대문 형무소에도 온양 호텔에도 다 같이 찾아오는 것이다.


학교가 늦었다고 일으키면 쓰러지고 또 일으키면 또 쓰러지던 그런 잠을 다시 자 볼 수는 없을까?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잠은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 온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버릴만한 글이 하나 없습니다. 나는 피 선생님처럼 글을 못 쓰지만, 아침에 아들과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잠, 프랑시스 잠 알아? 윤동주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인인데…….하며 시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물론 시를 다 외지 못해 도중 구글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잠이 부쩍 많아진 덕에 아들과 시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 방학 기간 어디 한번 놀러 갈 형편도 안돼서 안타깝다고 얼마 전 아내와 이야기했지만, 아들과 시를 함께 읽어 보는 것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일이라 좋았습니다. 잠으로부터 별 헤는 밤이라 하면 살짝 무리한 연결이긴 하지만 잠이 많아진 까닭에 피천득 선생님의 글을 찾아 읽기도 하고 윤동주 시인의 시를 아들과 함께 외는 일이 덤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늦잠이었다고 생각해봅니다.







illruwa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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