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굶는다고 안 죽어. 너 밥 먹으면 사람 아냐!
평소 연락도 잘되지 않던 녀석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야! 네 카레 소화 안되더라” 괜한 트집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이 카레가 소화 안되면 너 병원 가봐야 해” 카레를 또 내줍니다. 그냥 하는 말일 텐데 그래도 살피게 돼요. 머리를 처박고 카레를 먹는 모습이 뭉클합니다. 몇 해전 아내를 하늘로 보내고 생일 밥을 먹으러 온 친구...
나이가 들어 갈수록 생일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감사할게 많은 날인 것 같아요. 곁에서 오늘을 기억해 주고 추억될 한순간을 또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엄마 나 바쁜데, 왜?” “이 녀석 지 생일도 모르고 또 넘어가는구나. 오늘은 한 끼라도 제대로 챙겨 먹어~” 엄마는 달력에 동그라미 그려 두고 음력 생일을 한 달 내내 지켜보고 계셨을 겁니다. 이제 하늘의 엄마. 저도 별수 없이 후회하며 철들어 갑니다.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데 생일이라고 기어코 여기까지 찾아온 게 고맙습니다. 축하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하기 때문일 거예요. 카레를 꾸역꾸역 다 먹습니다. 생일밥이니까. “다음에는 사귀는 사람이랑 함께 와” “나도 식당이나 할까?” “너는 못생겨서 안돼! 손님들이 밥 먹으러 오는 줄 아니? 내 얼굴 보러 오는 거지!” 친구가 돌린 말을 실없는 농담으로 받아 줬어요.
하필이면 맑은 가을이었어요. 얼마 전에는 설악산으로 단풍놀이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아내가 곁에서 잠든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고 문자를 받고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도. 레. 미. 세 아들과 함께 영전 앞에 힘겹게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문상을 맞아 주거나 쉽게 위로하지도 않았고 누구의 울음소리나 탄식도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가족들이 이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을 하늘은 원망하기에 너무 높았습니다.
술에 취한 한 문상객이 꼬인 혀로 “형님 애들 생각해서라도 술 그만 드시고, 밥 좀 드세요. 이러다 큰일 나요!” 눈물조차 씹지 못하는 친구를 흔들어 댑니다. 친구는 배시시 옅게 헛웃음을 그립니다. 그건 위로도 걱정도 아니었습니다. 눈치 없는 그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아이들에게 떡을 쥐여주고 밥을 말아 옵니다.
참다못한 저는 다들 들으라는 듯 친구를 향해 “술 마셔! 며칠 굶는다고 안 죽어. 너 밥 먹으면 사람 아냐!” 제가 따라 주는 술을 연거푸 비우던 친구가 비로소 주검을 받아들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주저앉아 울먹이고 막내는 달려와 아빠 등에 얼굴을 기댑니다. 그제야 친척들의 오열이 터져 나오고 여기저기서 숙연한 흐느낌과 탄식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