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까마귀가 울어요. 까악~ 까악~
벌써, 다섯 바퀴째 이 작은 상가의 복도를 돌고 있는 청춘 남녀가 있습니다. 이 식당은 건물 내측에 있어 양쪽으로 복도가 있고 각각 출입문이 따로 있습니다. 여기가 턴 포인트인가 봐요. 처음에는 손님인가 싶어 볼품없이 움찔댔습니다. 청춘 남녀가 오른쪽으로 지나가면 잠시 후 다시 왼쪽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남자의 걸음이 이상해요. 자세히 보니, 카디건 안으로 환자복이 보이네요. 발에는 깁스를 했고요. 아마도 병문안을 온 여자친구를 애틋하게 배웅하는 과정으로 짐작이 됩니다.
사이버러버 재우 씨는 요즘 고등학교 정문에서 체온을 측정하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리고 끝나면 곧장 여기로 와서 하이볼을 마셔요. 지난번 ‘헛방’의 상처를 겪고 나니, 더 이상의 연애는 부질없는 짓 같다며 혼잣말 같은 선언을 자꾸 저한테 해요. 어쩌라고... 그러고 보니 재우 씨는 얼굴 한번 마주한 적 없는 그 헛방을 한 번의 연애로 생각하네요. 진심을 다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어떤 말을 해줘도 부정적인 해석으로만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어쩌라고... 저는 아침부터 저러고 있는 게 꼴 보기 싫습니다.
그 커플이 다시 오른쪽 복도로 지나갑니다. 그리고 잠시 사라졌다가 금방 왼쪽 복도로 나타나요. 훈남이네요. 그래서인지 질투가 나지 않습니다. 세월의 가름에 그냥 부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고릿한 나이쯤 되면 새로운 사랑은 불법이 되거나, 기대나 희망조차 도덕적이지 못한 욕망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불쑥 찾아온 ‘심쿵’에 죄책감이 뒤따를 수도 있고,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스스로 치부해 버리며 애써 털어 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 20대 중반인 사이버러버 재우 씨가 얼마나 가능성이 넘치는 시절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해 주지만 그때마다 까마귀가 울어요. 까악~ 까악~
먹성 좋은 단골 소녀가 “아저씨는 제 첫사랑 체육 선생님을 닮았어요” 위로일까요? 고백일까요? 그냥 그렇단 말이라는 걸 알면서 또 저 혼자 헷갈립니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에 엉클어진 머리카락이 날리며, 시를 읽어 주는 국어 선생님이 아니라 왜 체육일까. 저는 이게 섭섭합니다, 저 같은 얼굴은 체육인가 봅니다.
...혹시, 조폭설의 기원이 저의 얼굴 때문일까요.
소녀의 그릇이 딸그락 거리네요. 라멘의 면을 다 건져 먹은 모양입니다. “밥 좀 줄까?” “네!!!” 옆에 있던 소녀까지 함께 합창을 합니다. 그 모습에 우린 모두 웃음이 났습니다. 사이버러버 재우 씨도.
아~ 집에 갈 때 설레임 사 먹어야겠다. 그리고 몰래 설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