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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 아름다운 Jun 07. 2019

쟤가 만진 거 아냐?

지금  나 말하는 건가

사무실에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어느 날 아침, 어제처럼 오늘도 다른 것 하나 없이 똑같았다.

"어우 금고가 잠겼어"

"이거 어떡하나"

이렇게 시작된 옆 사장님의 혼잣말은 계속되었고 다른 분들에게도 똑같이 하셨다.

나는 대화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공간은 오픈되어있고 내 귀도 열려있기에 큰소리로 하는 말은 당연히 모른 척하기 힘들어 다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는 커다랗고 오래돼 보이는 금고가 하나 있다. 옆의 사장님 책상 바로 뒤에 놓여있다.

사건은

본인은 자물쇠의 번호를 맞춰놓았는데 누가 이걸 돌려놓아서 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분들이 물었다. 

"비밀번호 모르세요?"

"몰라"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고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오셨고 계속 걱정을 하셨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금고 회사에 전화해 열쇠 따는 분을 부르면 될 텐데,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신발 고치면서 열쇠 만드시는 분을 찾아간다는 말만 했다. 

'그건 금고라고요' '동네 열쇠 방에서 그렇게 쉽게 해 줄 수 있으면 왜 금고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대화 참여권은 없었다. 나는 낄 자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하루 종일 조용한 공간에 이야기할 이슈가 필요한 것 같아 보였다.


"쟤가 청소하다 만진 거 같아"

라는 말을 들었다. 

쟤는 아마도 나를 뜻하는 거겠지?


하......


그 안에 얼마가 들었냐는 대화에 60만 원 정도가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걸 왜 통장에 안 넣고 뭐 금고까지 이용할 만한 돈이라고 거기에 넣었을까? 

-비번도 모르는 금고에?

-그것도 잠그지도 않고.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와서 저 대화에 끼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청소하다 뭘 만져?'

너무 짜증이 팍 나서 목구멍이 꽉 찼지만 그냥 못들 은척 하고 아까처럼 있었다.

왜 나지?


다행히 우리 대표님이 

"잘 찾아보세요. 어디다 비밀번호 적어놓으신 거 아니에요?"

하며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나의 위치를 스스로 잘 파악할 수 있는 날이었다.

이런 위치에 이렇게 쉽게 놓인다는 것

그동안 내가 얼마나 보호받는 환경에 있었던 건지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본인 서랍에서 적어놓은 비밀번호를 찾아 커다란 금고문을 열어 60만 원을 꺼냈다.

나는 끝까지 관심 없이 그쪽을 쳐다보지 않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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