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늘 마지막 해외여행이 언제였는지를 질문받았는데 9년전으로 기억된다. ㅠㅠ
그때는 그게 내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앞으로 펼쳐질 커리어에 여행도 포함이 될 줄 알았지만 그 꿈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당시 나를 홍보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엽서를 만들었고 그 엽서는 누군가에게 보내기도 하고 몇 군데에서 팔기도 했다. 그리고 디지털화된 그림은 블로그와 홈페이지에도 올려놓았다.
그러다 어느 날 언니와 조카들과 동네의 한 옷가게를 들어갔는데
"이모 그림 여기 있어" 하며 조카가 불렀다.
무신경하게 티셔츠로 시선을 옮겼고 거기엔 내 그림이 있었다. 자세히 봐도 내 그림이었다.
그 자리에서 티셔츠 산 곳을 순진하게 물어봤고 그 가게는 당연히 알려주지 않았다.
저작권 위원회에 전화해 상담을 받은 후, 소장을 만들기 위해 준비를 했다.
증거 자료 확보를 위해 밤에 열리는 동대문 도매시장을 돌아다녔고, 몇 군데 도매상에서 판매 중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 도용되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가 보이게 사진을 찍었고, 주소와 연락처 등을 기록했다. 별일 아닌 이런 일들이 매우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까지 가는 걸 망설이는 것 같다. 막상 어렵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그렇게 까지? 혹은 뭔가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등의 생각으로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저작권 위원회에서는 민사, 형사 고발까지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돼도 결국 내가 받는 심리적인 타격이 클 것이라 했다. 이런 일로 경찰서를 가봐야 내 일에 나만큼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조정으로 해결하는 게 보상도 적절히 받을 수 있고, 과정의 불합리성도 낮다고 느낄 것으로 보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준비하고 있던 소장은 조정에서 자료로 증거 자료로 사용하면 되었다.
그렇게 저작권 법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동대문을 왔다 갔다 하며 자료를 만들고, 내용증명도 보내고, 원그림의 저작권 등록도 하고(참고로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아도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나에게 있지만 그것을 문서화 하고 증빙 자료로 만들기엔 등록증이 합리적이다) 그 원그림이 내 그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그림을 그렸던 스케치들을 찾고(이게 있다니 버리지 못하는 나의 성격이 고마웠다 ㅠㅠ), 내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도 증명해야 했다.
내 그림의 값을 마음대로 내가 얼마라고 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운이 좋게도 당시 나는 다른 인터내셔널 브랜드와 티셔츠 작업 중이었고, 그 계약서가 딱 내가 티셔츠 작업에 얼마에 사용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계약서 내용 중엔 계약기간 중 다른 업체와 티셔츠 작업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 역시 있었다. 나에게 리스크가 될 수 도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무서울 게 없는 일들이 그때는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커리어, 직업을 증명해야 했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직업을 증빙하기 위해 나는 이러한 일을 했다고 그동안 일했던 계약서 등을 첨부했다.
이력서도 한통 넣었고, 졸업증명서도 추가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나의 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또 뭐가 있었지?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어렵지만, 꽤나 많은 것들로 나의 가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른 많은 창작자들은 이런 일 앞에서 그냥 문제 삼지 않고 지나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너무 스스로 참을 수가 없어 이런 결정을 하고 일을 진행했지만,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가 보상을 받아 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들은 잘못을 모른다.
잘못을 모르기에 용서를 해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 고민해 창작하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3군데의 업체와 조정을 하게 되었고, 그들도 나름 매출내역 등을 가지고 와서 이 티셔츠는 이미 동대문에서 한번 쫙 돌았기 때문에 자기들은 늦게 찍은 편이라 별로 팔지도 못했다는 말을 했다.
새로운 소식이었다. 이미 많은 업체에서 팔았다는 것이다.
그 말은 실제로 진정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구매한 그 업체의 티셔츠의 프린팅 상태는 저화질이었다 아마도 프린트된 티셔츠를 다시 스캔해 만든 것 같은 낮은 퀄리티의 프린팅이었다.
자신들은 영세업 체기 때문에 봐달라 소리를 질렀고, 내가 요구한 돈을 줄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조정 신청을 연락받은 후 나에게 전화해 일단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고 말하던 업체는 20분 정도 조정시간에 늦게 도착해 정해진 시간을 거의 잘라먹기도 했다.
동대문 상인과의 일대일 대응은 사회경험조차 하나도 없는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법정 조정을 위해 미니 재판장 같은 곳에 국선변호인단으로 보이는?? 사람 3명이 왔다.
점심 먹으러 가야 하는데 귀찮게 시간을 오래 끈다며 짜증 섞인 말투로 나에게 웬만하면 이런 영세업체(? 아니 누가 영세업체인가? 버스타고 온 내가 영세업체이지 이런말을하다가 한번 제지를 당했다) 사람들에게 야박하게 굴지 말고 합의하라고 했다. 그쪽에서 원하는 금액으로 합의 안 할 거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고소하라 했다.
귀찮았겠지 돈도 안 되는 일 하러 왔는데 자의식에 도취된 아티스트가 적당히 타협하지 않으려 함에 다들 짜증이 나 있는 것 같았고, 나는 빨리 결정하고 그들을 밥 먹으러 나가게 해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상담해주시던 직원분은 나에게 합리적 결정을 위해 심리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나는 타협점을 제시했고 그렇게 빠르게 마무리되었다.문서에 적혀있는 날 조정비용을 입금받았다.
돈으로 치유가 된다.
분하고 화가 났던 마음들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비용을 받은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입금이 되고 나서, 그리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고 나서 조금씩 잊어버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하는 일들의 스케일도 컸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여서 패기 있게 받은 돈을 다 여행에 써 버렸다.
그 후로 나는 휴가, 여행 등은 가지 못했다.
나의 다음 해외여행은 언제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