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같이살이 : 혼자이지 않은 삶
남편과 살면서 “왜?”라고
버릇처럼 묻게 되었다.
살면서 거의 뱉지 않았던 말이었다. 남편은 “왜는 왜야. 그냥 너니까.”라고 대답한다.
나는 어떤 행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한 결괏값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냥’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유 없이 그냥’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생각과 불안이 많은 나는 인간관계에서도 이것이 안전한지 계속 확인하려 드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신혼 초에 남편의 호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지?’라는 의구심을 품고 그것을 계속 물어보곤 했다. 내 질문에 남편의 대답은 늘 뻔하게도 “왜가 어디 있냐, 부부란 그런 거지.”였다.
도움을 받거나 호의를 받으면 반드시 보상하고, 대가를 치워야 하는 성격 때문에 나는 우리의 사이를 오히려 칼같이 나누려 했다.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계속 남편의 의지대로 호의를 베풀었고 나는 나의 의지대로 계속 보답을 했다.
신혼 초에 대학병원에서 수면마취로 작은 수술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보호자의 이름에 부모님이 아닌 남편의 이름을 적었고, 보호자 1명만 동반되는 병실에 남편과 함께 입원했다. 작은 간이침대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는 남편이 너무 안쓰러워서 퇴원 전에 미리 돌려보내게 되었다. 남편은 병실에 혼자 남게 될 나를 걱정했고 우리는 자신보다 서로를 더 걱정했다.
남편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나로 인해 남편이 출근도 하지 못하고 병실에 갇혀 있는 것이 미안했고, 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남편은 주지도 않은 눈치를 스스로 살폈다. 이제 부부니까 남편에게 기댈 줄도 알아야 한다는 엄마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들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누군가를 내 인생에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이 조금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부부 사이에도 당연한 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고마운 것은 고마움으로 표현하고 배려에는 감사를 전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예의를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 사이에는 당연함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당연함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그저 너라서. 나라서. 가족이라서. 부부라서. 조건 없이 뭐든지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나도 조금은 변화했다.
남편에게 조금의 기대를 걸기도 하고, 뭔가를 부탁하거나 요구하기도 한다. 여전히 남편은 조건 없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나또한 조건 없이 주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