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던 내가 낙서로 시작한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고 구경을 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 그려? 신기하다", "그림 잘 그린다", '나도 그려 줘" 등등. 그 칭찬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지방 소도시에는 나름 강남8학군처럼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교였다. 물론, 성적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인근 지역 학교에(이른바 뺑뺑이) 진학하는 것이 국룰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초/중등을 같은 재단의 학교에 진학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친구가 거의 중학교 친구다.
이 학교의 수업 방식은 독특하다 못해 가혹했다.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없다. 성적을 토대로 상/하 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아침에 등교해서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1교시 시작 전에 반을 이동한다. 대놓고 너는 공부 잘하는 아이,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나눠지게끔 하였다. 이게 과연 올바른 교육 방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로 하여금 공부라는 것과 더욱 멀어지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공부가 뭘까. 지금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연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기준조차 세워지지 않은 때였기에 어른들의 "공부해라"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학을 공부해라. 문제를 풀어라.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을 외우고, 그것을 맞추면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일까? 찍어서 성적이 높은 사람은 공부를 잘 하는 걸까. 그런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은 공부와 나를 점점 멀어지게 했다.
공부 대신 잘 하는 것이 있다면 두 가지였다. 바로 운동과 낙서였다. 엄격했던 나의 중학교에서는 동아리 활동 조차 통제되어 있었는데, 나는 소규모로 만화동아리를 만들어 동아리 회장을 했다. 하지만 이내 만화동아리를 해체하라는 학교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짧은 활동을 중단했다. 아쉬운 마음에 공책이나 교과서 모서리 부분에 남는 공간을 활용해서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어느 선생님의 왈, "그런 거(그림 그리는 행위) 아무짝 쓸모 없고 공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런 거 그릴 시간에 공부나 해라."
의기소침해지고 소심해지긴 했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몰래 그렸다.
7차 교육과정이라는 교육과정을 거치며 내가 갈 고등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공부에 흥미도,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잘하지도 못했기에 내가 갈 고등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나는 고교 진학을 마음으로부터 포기했다. 그래서 성적은 더욱 엉망이었다. 어느 날 교무실에서 엄마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가 왜 여기서 나와요?"
엄마는 담임 선생님의 호출로 학교에 방문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적나라하게 댁의 따님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는 당황했고, 담임 선생님은 지금부터 네가 갈 학교는 네가 알아서 찾아오라고 선포했다. 내가 가고싶다고 갈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됐을까?나의 중학생 시절은 어릴 적을 떠올리면 제일 싫었던 나날들로 가득하다. 나로선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공부라는 것 하나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눈에 띈 현수막이 있었다.
-정규 고등학교 졸업장을 드립니다- 경남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이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정규 고등학교 졸업장을 준다고 하지 않나. 게다가 그림 그리는 애니고 라니!
내가 진학할 학교를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아주, 우연찮게도.
그렇게, 나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 때부터였다.
나의 그림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