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살이] 어설픈 재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by 칠일공



누군가는 말했다. 어설픈 재능은 저주라고.





미술학원을 하루 만에 그만두었다.


미술학원은 딱 한 번 간 적이 있다. 나는 3남매 중 둘째라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입시학원을 다닌 적도 없지만, 애니고에 진학한 후 막연히 미술학원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수업 시간에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을 떡하니 두고 따라 그려야 했던 것. 심지어 이 행위를 통해 고 3말 대학교 진학이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미술 입시는 많이 달라진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입시 시절에는 조각상(아그리파, 비너스 등등의 흉상)을 자신이 보이는 위치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투시나 소실점, 비율 등등을 분석하여 누가 더 진짜 같이 비슷하게 잘 그리는지를 판단 내리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었다.


미술을 하는 고등학교에 왔으니,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겠지?


그렇게 나는 미술 학원을 등록하게 됐지만, 하루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미술입시학원 첫날 모두가 둘러 앉아 흰 도화지에 선 긋기만 하루종일 기계처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정도는 그림을 그려본 난 잘 알고 있다. 그림을 그리려면 선 정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큰 도화지에 줄을 죽죽 긋고 있노라니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현실자각을 하게 된 것. 없는 형편에 미술학원을 다니겠다고 왔는데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줄긋기를 마스터 하면 세모, 네모, 동그라미 순으로 난이도가 올라가고 그 후 모양들로 잘 이루어진 조각상을 그리게 되는 것이겠지.


이렇게 되자 공부가 뭔지 고민해야만 했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 그렇게 나는 환불을 받고 하루만에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지금도 나는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입시미술을 해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아그리파 그리기는 나에게 지금까지도 하지 않았던 것들 중 잘 한 것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식의 미술은 남들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에 불과하고, 재능보단 기능에 가까운 행위다. 누구라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 결국은 해내기 마련. 그 시절의 나는 남들과 동등한 경쟁을 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같은 조건을 두고 누가 잘하나 경쟁하는 것에 대한 회의는 여전하다.


"그림을 좀 볼 줄 알아?"

"내가 보고 좋으면 그게 좋은 그림이야."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사였다. 누군가가 좋다고 하더라는 카더라 식보단, 내가 가진 재능을 적극 활용하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좋아했다. 그렇게 나는 작가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재능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결국, 근본이 없는 그림을 그리게 된 나는 지금까지도 입시미술을 통한 정석을 밟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은 불편함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예술이라는 게 정답이 따로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극복하기보다 내 방식대로 더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가진 재능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어설픈 재능은 저주라고 했던가.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이 행위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며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는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쓰게 되는 기회 비용이 어마어마 했던 것.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몇 달 자취비용이 나올 수도 있고, 남들처럼 쇼핑을 자유롭게 해본다거나 아직 갚지 못한 학자금을 다 갚는다거나. 누리지 못한 많은 것을 해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그림 팔아서 돈 많이 벌겠네" 라고 생각을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돈이 필요하다. 작품활동을 시작한 극 초기 신진작가였던 나는 포트폴리오 북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직접 갤러리에 방문해서 전시를 의뢰하거나 심사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반응은 늘 미미했다. 이름 없는, 나이 어린 작가를 써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그림 전시하면 돈 받지 않냐"는 이야기가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였다. "그림을 걸어주는데, 왜 돈을 내야되냐? 오히려 받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와 공간 운영자는 서로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운영자의 경우 '내가 운영하는 공간에 당신의 그림을 걸어주니 대관료를 받아야지, 임대료를 받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작가의 경우 '비어있는 공간에 내 그림을 걸어주는 것이니 내가 단기 인테리어를 해주는 댓가를 받아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작가들은 작품활동 초반에 대관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전시 공모를 통해 무료로 대관료를 지원받거나, 초청 전시가 아닌 경우 일반적으로 신진작가들은 소정의 대관료를 내고서라도 작품을 걸고 싶어한다. 결국 갤러리도 상업 공간이라, 판매율이 높은 작가를 섭외해서 작품을 전시하며 티켓 장사를 하거나 그림 판매금의 수수료를 받아 운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지도 있는 작가를 원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비용을 지불하고 전시를 하고, 그림을 팔지 못하면 결국 작가는 마이너스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고, 전시를 했고, 그림을 팔지 못했고, 돈을 벌지 못했다. 결국 이 행위가 나에게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쓰는 행위가 되었다. 개인의 만족도를 위해서라기엔 과했고, 그저 취미라기엔 너무나도 고급 취미였다.








10년. 그렇게 돈을 벌지 못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작품 전시 활동으로 고군분투를 했던 세월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가진 그림 실력에 대해서.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면 덜 가난했을까. 혼자만 만족하고 그냥 그렇게 취미로만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생활고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남들보다 덜 자고, 덜 먹고, 더 일하며 그렇게 나는 그림이라는 재능을 빛을 보기 위해 애썼지만 내게 남은 건 전시 이력 몇십 줄과 빚 뿐이다. 30대의 나는 모은 돈 하나 없이 빚만 있었고, 이쯤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설픈 재능은 저주일 뿐이라고.



저주가 된 재능을 통해 나는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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