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툰] 셧다운(shutdown)의 해, 2020년

슬럼프의 장기화, 그 사유에 대하여

by 칠일공


코로나 블루와 함께 찾아온 일시정지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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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날들

코로나 19로 시작해 코로나 19로 끝나는 2020년. 처음엔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역병 따위가 우리의 삶을 위협할 것이라고는...


시간이 흘러 먼 훗날 2020년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마스크와 자가격리, 사회적&생활 속 거리두기 1~4단계 격상, 확진자 발생, 확진자 동선, 재난문자, 재난지원금 등 생애 처음 겪는 단어들로 가득한 날들만 기억하게 될 듯하다.







#생각보다 너무나 길어진 개인 작품 활동의 슬럼프

움직이지 않는 손. 그려지지 않는 그림. 그리고 이어진 극심한 코로나 블루.

이 모든 것에 대한 핑계라면 핑계, 게으름이라면 게으름에 대한 질타와 자아성찰, 자기반성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고 새로운 다짐의 시간을 갖고자 에세이 툰을 통해 녹여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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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20년의 시작

2019년에 엄마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왼쪽 다리의 오다리 교정수술을 받았다. 인공관절이 수술과 회복에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지만 현존하는 수술 방법으로 인공관절의 수명은 10년 남짓이라 60대인 엄마가 그 수술을 하게 될 경우 80대 이후 걷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첫 번째로 수술을 끝내고 6개월 간의 회복 후 두 번째, 오른쪽 다리까지 수술을 결정했다.

첫 수술 후 택시를 타고 병원을 오가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비효율성을 최소화 하고 보다 원활한 케어를 위해 생애 첫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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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은 나는 2013년 면허를 땄지만 장롱면허로 7년째 무사고였다. 차를 사고 2~3개월간은 주차장에서만 운전을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운전이 가능하게 되자마자 생애 첫 교통사고(심지어 터널에서의 2중 추돌 사고였다). 첫 운전경험은 자동차 비용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안은 채 출발하게 된다.





생계형 작가라 문화예술방면의 예술인 피해와 직장인의 타격을 동시다발적으로 받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수업 진행과 지자체 행사 등이 이루어지지 않자 주로 관공서, 학교 등과 거래를 해오던 디자인 회사에 재직 중이던 나는 일거리가 현저히 줄어들어 반강제로 재택근무로 전환되었다. 회사는 “고용유지지원금”이라는 정책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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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재택근무도 불법이지만 이렇게라도 생계유지를 해야만 했기에 반 강제로 사인해야만 했다. 엄마의 수술 직후라 본가에서 생활 중이던 내게 재택근무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본가에서의 근무는 불편함 그 자체였고 각종 질병만 얻고 월급 또한 반 토막이 나버렸다. 하지만 버티기도 결국 한계가 왔고 온갖 역경과 눈칫밥의 환경 속에 결국 퇴사를 하게 된다.





다른 예술인들처럼 계약파기, 불발, 행사 취소 등
다양한 아픔을 겪은 한 해기도 했다.






동기부여와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오래된 장비를 바꿨다.

서울을 떠나와 지방러가 된 나에게 온라인 활동을 원활하게 해줄 수 있는 환경과 장비는 불가피하다는 핑계로.

문제는 장기화된 슬럼프와 코로나 블루로 인해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함정...

(이 때부터 개인적인 경제활동, 예술활동의 잠정적 셧다운)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경제활동 어려움 등으로 예술인 심리상담을 신청해 받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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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중증 우울증. 우울증은 현대인 누구나 흔히 겪는 질병이니까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하지만 실업 상태에서의 무의미한 상담에 더 이상 시간과 비용을 쓸 수 없던 나는 상담 역시 중단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한동안 센터는 내 상태보다 상담을 종료하기 위해(다음 상담자를 받아야 했을 터) 연락을 취해왔는데, 이런 연락을 받는 것 조차 힘들었던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상담 종료를 희망한다고 스스로 센터에 연락을 해야 했고 엄마 케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반 칩거 상태로 들어갔다.


하지만 실업자가 된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2차 재난지원금은 받을 수 있었다.





상황을 탓하기보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피할 수 없으니 즐겨보려는 시간 또한 가졌다.

우울하다고 쳐져 있으니 더욱 우울해지게 마련.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질 무렵 생애 첫 캠핑도 떠났고, 거리두기가 1단계로 분위기가 제법 좋아질 무렵엔 시간을 맞춰 동생과 함께 제주도 자매 여행도 다녀왔다.





이럴 때는 직장인 겸 생계형 작가여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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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수급 확정

수술 후 8개월 정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엄마는 꾸준히 회복을 거쳐 이제는 다시 활동이 자유로워졌고, 나는 초보운전이지만 이제는 제법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퇴사 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서류 제출, 증빙과 퇴사한 회사의 협조, 기타 다양한 노력을 통해 5개월 간의 실업급여 수급이 결정 났다.






코로나는 끝나기는 커녕 더욱 심각한 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온갖 정치 루머, 음모론 등이 떠돌며 생명을 위협하는 역병 앞에 전 세계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2020년을 떠올리면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기억나는 것, 이뤄낸 것 하나 없이 힘들기만 했던 한 해였다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20년은 떠나보내고 새롭게 다가올 2021년은 새로운 희망의 해가 뜨길 간절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 뜨는 해를 보러 해돋이 따위는 가지 않을 예정이다)


10p.jpg 슬럼프 극복 또한 2021년의 목표! 셧다운 탈출을 기원하며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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