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일본에 사는 친동생한테 부탁해서 전쟁 문학 전집을 구매했다.
일본에 한 출판사가 창립 85주년 기념으로 냈던 전집이었고 총 20권(+해설 1권) 자리다.
지금은 새로 인쇄는 안하는 것 같아 아무리 찾아봐도 새 제품을 구매할 수는 없었다.
20권이라 가격이 많이 나가 나중에 도서관에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구매를 못하게 되니 가지고 싶어졌다. 인간의 심리란 정말 신기하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잘 쓰인다는 중고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러니 상태가 좋은 20권+해설 1권 세트를 반값으로 파는 데가 있었다.
해외 카드 결제는 안돼서 친동생한테 결제를 부탁하게 되었고 동생이 판매하는 고서점에 문의를 해 책의 상태를 확인해 준 다음 구매/해외 배송까지 해줬다.
그 전집이 도착하기 직전, 우리 집에는 새로운 책장이 도착했다.
원래 있던 책장에 더 이상 자리가 없어 추가로 구매한 큰 책장이었고 아직은 자리가 많았다.
21권은 하나하나 비닐 포장이 되어있었고 나는 포장을 풀며 책장에 꽂았다.
다 꽂고 나니 행복했다. 무엇보다 든든했다.
집에만 있어야 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심심하지 않겠다 싶었다.
물론 내용은 행복과는 거리가 많이 먼 전쟁과 관련된 단~중편이 수록된 책들이지만.
그리고 다른 의미로도 든든했다.
이렇게 전쟁을 직시하고 취재나 자신의 기억을 통해 얻게 된 시선들을 기록하려고 한 작가들이 많다니, 하는 그런 든든함이다.
그런데 막상 전쟁 소설을 눈앞에 둔 나는 자꾸 방심하고 있음을 느낀다.
느낌이 싸한 전개에도 그냥 괜찮을거야, 하면서 읽고 있다가 비극이 일어나고 나서야 "아, 맞다 이건 전쟁이지"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도 배경은 전쟁이다.
주인공이 영웅이 되거나 주인공의 연인만은 무사하거나 그런 일은 없다.
좋았던 이웃은 총을 맞고, 주인공의 아내는 주인공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폭행을 당하고.
"그래, 이게 현실인데"
하는 생각에 잠시 책을 덮는다.
소설이라고, 픽션이라고 내가 너무 방심하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행복과 무사를 바라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한 엔딩을 보려고 이 책을 산 건 또 아니었다.
현실을 직시한 작가들의 시각에서 함께 전쟁을 보고 싶었고 그 시기에 산 사람들의 흔적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이 전집을 구매했다.
그런데 평화로운 매일을 보내는 나는 자꾸 "내 기준 해피엔딩"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소설에서 그려진 주인공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소설의 소재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된 사실도 자꾸 잊게 된다.
지금 여기서의 생활은 평화롭고 앞으로도 완전히 똑같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일로 치거나 외면할 일이 없도록 이 책을 읽어 나가고자 한다.
방심하지 않기.
그게 바로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전쟁 소설을 읽을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