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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y Aug 26. 2023

비망록 Vol. 20 학살과 동화

르완다, 트와

오늘은 지난주에 정리한 르완다 학살과 관련해서 "트와"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트와의 개요

원래는 산이나 숲에서 생활하는 유목 수렵 채집민족이다.

르완다 외에도 콩고나 부룬디에도 거주하고 있다고 하고 적어도 르완다 내부에서는 차별적인 대우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던 소수민족이다.


현재 트와인은 정부의 정착 정책에 따라 수렵이 금지된 상태이며 다른 민족과 동일하게 돈을 벌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교 생존학연구소에 있는 후쿠다의 에세이를 참고했다.

"暴力、音楽、感情:中央アフリカ の元狩猟採集民との マルチモーダル人類学"(폭력, 음악, 감정: 중앙아프리카 전수렵채집민과의 멀티모달인류학) https://www.ritsumei-arsvi.org/essay/essay-4030/)



1994년 학살에서의 트와

르완다에서 1994년에 일어난 대학살에서는 트와인도 희생되었다.

당시 트와인의 인구는 르완다 인구의 1% 정도였는데 그중 3분에 1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주로 표적이 된 투치족보다도 높은 비율로 피해를 본 셈이다.


그런데 분쟁의 구도는 후투vs투치라는 식으로 단순화되어 전해지게 되었고 희생된 트와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투치나 온건파 후투에 대한 애도, 가령 기념비를 새우는 등의 추모 행사가 있어도 트와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보상도 기록도 사죄도 없는 채 평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르완다 정부는 "후투, 투치, 트와"라는 구별을 없애고 "르완다인"으로 하나가 되는 방침을 내세웠다.

그래서 더 트와는 자신들이 "트와"임을 주장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트와임을 내세우는 일은 르완다의 방침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소외되어 온 소수민족. 가슴이 아프다.


장기적으로 보면, 혹은 앞으로 어떻게든 르완다에서 살아갈 트와의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동화(同化)의 길이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애도 없이 역사까지 왜곡하거나  지워버리는 건 다수파 측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모두 르완다인"이라는 정책을 진행해 왔는지 그 온도까지는 모르겠으나 트와에 대한 차별이나 학살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그래도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이 안전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려되는 건 아무리 그런 민족을 나누는 개념을 없애려고 해도 사람들 속에 차별적인 인식이 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인식이 소수민족에 대한 공격과 새로운 갈등을 낳게 되니... 그런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2010년 단계에서 트와는 약 3만 5000명이라고 한다.

13년 전 숫자이니 더 줄어들었을 수 있다.

숫자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의 존재와 비극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싶고 르완다 현지에서 잘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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