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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y Aug 09. 2023

욕심

한 단어도 놓치기 싫은 마음

나는 한국 콘텐츠를 볼 때 가능하면 자막을 켜고 본다.


거의 이해는 되지만 방언이나 전문용어를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어 자막이 있으면 든든하다.

옵션으로 일본어 자막이 있다면 일본어를 선택하기도 한다.

문화적/언어적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표현들을 번역가 분들이 어떻게 번역할지가 늘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막의 든든함과 재미를 알게 된 나는 일본어 콘텐츠를 접할 때에도 자막을 켜고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네이티브 언어인데도 생각보다 내가 귀로 듣는 것 만으로는 놓치고 있었던 정보가 많았다. 한자를 착각하고 있었던 표현들도 종종 있었다.


한 번 그런 경험을 하니 반성하는 마음도 생겼고 욕심도 났다.

모든 표현을 흡수하고 싶은 욕심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일본어 작품도 일본어 자막을 켜거나, 일본어 자막이 없으면 한국어 자막을 켜서 귀와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을 감상해 보니 조금씩 피로를 느끼게 되었다.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는 언어라 부담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는 달랐던 것이다.


확실히 새로 배우는 표현이나 번역 방식도 많고 콘텐츠에 뿌려진 흥미로운 장치들도 전부 다 남김없이 즐기는 느낌이라 좋았는데 한 편을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자꾸 콘텐츠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조금은 놓치는 정보가 있더라도 즐겨 왔는데 억지로 100을 전부 다 머리에 집어넣으려니까 무리가 왔다.

오히려 그 놓치는 정보들 때문에 추측하고 상상하는 힘도 났었던 것 같은데.



배우고 싶은 욕심이 시발점이었으니 지나쳤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내 욕심이 컸음을 인정하고 한번 내려놓기로 했다.

욕심보다는 한자를 몰라도, 표현 하나 놓쳐도 중요한 정보라면 언젠가 알게 되겠지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본다.


공백이 있어야 내가 채울 여지도 여력도 생긴다는 것을 하나의 시행착오와 반성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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