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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Oct 18. 2021

투자는 강심장을 가진 아내에게 맡기고.

<작당모의(作黨謨議) 8차 문제(文題) : BTS>

   내 인생에서 첫 번째로 산 주식은 두산인프라코어였다. 지금의 법으로는 퇴사 전 퇴직금을 함부로 손댈 수 없지만, 당시에 회사는 그해의 퇴직금을 12월의 월급과 함께 통장에 넣어줬다. 당연한 내 돈을 받는 건데도 마치 연말 보너스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월급 두배만큼의 잔고가 찍히는 12월은 분주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은 없는지 살폈다. 그 해에는 그 돈으로 두산 인프라코어의 주식을 샀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 카피가 마음에 들었다. 미래가 있는 기업처럼 느껴졌다. 주가 하락기에도 인프라코어라는 이름처럼 기반기술의 중심부에서 흔들림 없이 버틸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두산 베어스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두산 인프라코어의 주가는 기대와는 달랐다. 사자마자 가격이 떨어졌다. 내가 산 가격보다 10% 정도 아래에서 허덕이며 1년 가까이 지지부진했다.

   "두산 베어스가 우승만 하면 다시 주가가 오를 거야."

   그해 한국시리즈는 SK와 두산이 붙었다. 나의 퇴직금을 놓고 벌이는 한판 승부. 평소보다 응원에 진지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1차전을 잡았지만, 이후 거짓말 같은 4연패를 하며 우승을 SK에 내주었다. 두산 베어스의 우승이 좌절된 다음 날, 가지고 있던 두산인프라코어 주식을 미련 없이 팔았다. 내 인생 첫 번째 주식투자는 그렇게 쓰라림만 남겼다.




   나의 투자성향은 고수익 고위험 투자형. 한 번도 삼성전자나 LG화학 등 시가총액이 높은 종목을 사 본 적이 없다. 덩치가 큰 만큼 하락장에서 떨어지는 게 상대적으로 둔하지만, 그만큼 상승장에서 오르는 것도 답답했다. 다이내믹하지 않고 지루했다. 분산투자도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분산투자가 리스크 관리에 좋다지만, 내 귀에 쏙쏙 박혔던 말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었다. 리스크를 관리해서는 고수익을 노릴 수 없었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만 담았다.


   한 바구니에 담을 주식을 고르는 건 나만의 룰이 있었다. 아무 주식이나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기업. 그 무언가로 나를 끌어당기는 기업. 그래서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들지 않을 기업. 진라면이 맛있어서 오뚜기를 샀고, 쓰고 있는 로션이 촉촉하게 피부에 잘 스미는 것 같아 LG생활건강에 관심을 두었고, 웹툰으로 재미있게 보았던 ‘유미의 세포들’이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해서 스튜디오 드래곤 주식을 기웃거렸다.


   사려는 주식 종목은 나름 과감하게 잘 고르는 것 같은데, 내 주식투자의 가장 큰 문제는 파는 시점을 잡는 게 영 서툴다는 것이었다. 주식을 사고 난 이후 주가가 떨어지는 건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두려움없이 잘 버티는데, 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안절부절이다. 떨어질 때는 남의 주식 보듯 몇 달 동안이나 잘도 버티면서 조금만 오르면 참지 못하고 팔아버린다. 이럴 거면 굳이 하이리스크를 왜 감수하는지. 내가 판 이후, 가격이 더 오르는 주가를 들여다보는 건, 사고 나서 떨어지는 주가를 보는 것보다 마음이 더 아프고 참기 어려웠다.  


   아내가 샀던 네이버 주식의 수익률이 30%가 넘었다며 자랑하는 말을 듣고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의미 없다. 팔아서 손에 쥐어야 내 돈인 거지."

   하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전문가인척 이야기하긴 했지만, 수익률이 30%가 넘도록 팔지 않고 버틴 아내가 신기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조금만 올라도 팔아버리는 난 지금껏 10% 이상의 수익률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10% 이상의 손해는 익숙하지만.


   작년 10월,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를 점령하던 BTS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상장을 했다. 시가총액이 엔터 3사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만큼 거품이 끼었다는 말도 들리고, 아직 수익원이 BTS 뿐이어서 지속적인 성장이 의심된다는 말도 많았다. 상장일 이후 며칠간 빅히트의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주가가 20만 원 아래로 떨어졌을 때 빅히트의 주식 10주를 샀다.

   "수익원이 하나뿐이라지만, 그 유일한 수익원이 바로 BTS야."

   자신만만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BTS의 관계는 두산 인프라코어와 두산 베어스의 관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가까웠다. BTS의 신곡이 발표되고 그 곡이 다시 한번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날아오를 거라 생각했다.


   신곡 ‘Life Goes On’ 이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나왔지만, 빅히트의 주가는 위로 치솟지 않았다. 슬금슬금 내려간 주가는 30%의 손해인 가격으로 자리를 잡았다.  

   "팬심으로 들고 있지 뭐. 제이홉 멋지잖아. 응원한다는 마음으로."

    팬심으로 위로하며 버티던 주식을 올해 초 본전을 회복하자마자 팔아버렸다. 석 달 넘게 들고 있던 주식을 팔자마자 주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판 금액의 30%만큼이 올랐다.




   은퇴 후 돈 관리는 투자에 신중한 아내에게 맡겼다. 나도 내가 무서웠다. 적은 돈으로 놀이처럼 하던 주식투자 실력으로 소중한 은퇴자금에 손댈 수는 없었다. 은퇴자금의 관리는 가격이 올라도 팔지 않고 버티는 강심장을 가진 아내가 책임지는 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목을 사야 하는지, 사는 시기는 언제로 잡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아내에게 나의 공격적인 투자방법을 가끔 어필하기는 한다.  

   "나한테 맡겨. 내가 마카오 카지노에 가서 두배로 불려 올게."

   물론 들은 척도 하지는 않지만.


   투자는 아내에게 맡기고, 난 내 용돈으로 소소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회사의 주식을 사면서 나의 길을 가련다. 진라면이 신라면을 잡고 점유율 1위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유미의 세포들’을 본방 사수하면서, BTS가 또 한 번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를 응원하면서.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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