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당모의(作黨謨議) 8차 문제(文題) : BTS >
# 1. 2015년 : 광탄이라고? 미칠 광이라고?
“캬~, 어제 그 남자애들 춤 기가 막히게 추더라. 완전 칼군무야. 열일곱이나 열여덟 살쯤 될까, 곱상하게 생겨가지고는 아주 날아다니더구먼... 이름이 광탄인가? 그랬지, 아마? ‘미칠 광’ 자에 ‘탄환 탄’ 자, 미친 총알인지? 아니면 광탄면 출신 아이돌이라 광탄인지?... 근데 그 놈들 뜨겠어, 춤도 노래도 제법이더라고. 인사도 넙죽넙죽 시원시원하게 잘하고. 딱 보면 알지, 내가 좀 촉이 좋잖아? 분명히 ‘뜬다’에 내 왼손을 걸지...”
아이돌 그룹에 내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뜬다 안 뜬다를 두고 내기를 할 것도 아니요, 굳이 왼손까지 걸어가며 자충수를 둘 엄청난 일도 아니건만 아침부터 남편은 어제의 일에 열변을 토하며 브리핑 중이었다. 해마다 회사 주최로 여는 <무료 자선콘서트>에 지원 나갔다 밤을 새우고 들어와 쪽잠을 자고 겨우 아침밥을 먹는 중이었다. 작년에는 사람에 치여 죽다 살아났다며 푸념만 잔뜩 늘어놓더니 올해는 마이크 잡고 진행을 도왔다 하더니 공연 볼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자선콘서트는 낮부터 회사 소유의 골프장을 오픈, 각종 놀이와 나눔 행사를 진행하는데 저녁 6시부터 펼쳐지는 초청 연예인들의 공연이 하이라이트였다. 2015년 그 해에는 걸스데이, EXID, 비투비, 정동하 등의 연예인들이 출연했는데 뜬금없이 보이그룹 한 팀이 눈에 띄었던 게다. 인사만 잘해도 사회생활 50%는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인사 잘하고 눈빛이 살아있는, 활기 넘치는 그 보이그룹은 싹수가 있는 놈들, 즉 ‘클 놈’ 혹은 ‘뜰 놈’으로 낙점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광탄소년단, 좀 웃기지 않나? 동남아 순회공연을 방금 마치고 돌아온 파주시 광탄면이 낳은 아이돌, 뭐 그런 건가?”
“광탄소년단이 뭐야? 방탄소년단이겠지. 요즘 여학생들이 엄청 좋아하는 그룹이야. 노래, 춤, 랩, 작사, 작곡도 다 하는 모양이던데...”
나는 딸에게서 이미 방탄소년단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던지라 이름을 정정해 주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광탄, 좀 이상하다 했어. 그러면 방탄은 또 무슨 뜻이람? 진작 알았으면 걔들 사인도 받아올걸 그랬네. 걸스데이랑 EXID 사인은 받아왔는데...”
그때였다. 늦잠 자는 줄 알고 있었던 딸의 방문이 ‘쾅’ 소리를 내며 부서질 듯 열린 것은.
“뭐라고? 아빠~~~~~ 방탄소년단 사인을 안 받아 왔다고? 방탄소년단 나온다고 말도 안 해주고. 나오는 줄 알았으면 콘서트에 갔을 거 아냐. 데려가지도 않고... 왜 말도 안 했어, 왜... 엉엉”
방탄소년단이 조용하던 우리 집을 초상집으로 만들어 놓은 날이었다.
# 2. 2016년 : 아미라고? 군대는 왜 가는데?
“엄마, 나, 아미(ARMY)에 가입해야겠어요. 저번에 용돈 맡겨놓은 거 주세요.”
딸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기승전은 없고 결론만 있는, 다짜고짜였다.
“뭐라고? 아미라고? 군대? 군대는 왜 가는데? 군대는 가입이 아니고 지원이라고 해야 할 텐데... 군대 갈 때 돈 내고 가야 된대? 돈은 갑자기 왜 필요한 건데?”
“어무니~, 제발, please, 돈 안 주려고 일부러 이러시는 건 아니죠?”
나는 방탄소년단 노래는 좋아했지만 아미가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이름임을 몰랐다. 웬 군대 타령인가 했다. 게다가 팬클럽 가입하는데 가입비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조용필 팬 시절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 물론 가입비를 내면 굿즈와 공연 티켓팅 할 때 선 예매할 수 있는 혜택이 있는 아미 카드 등 몇 가지 기념품이 보내져 오니 그 돈이 그 돈일 것이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놀이공원도 ‘입장만 가능한 티켓’이 있는데 ‘단순 가입만 하는 팬’은 안 되는 것인가? 하기야 팬 입장에서는 멤버 사진 한 장 한 장이 소중할 것이다. 공연 티켓 선 예매는 또 얼마나 큰 혜택일까. 팬이 아닌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팬의 입장에선 쉽게 이해가 됐다. 조용필 브로마이드, 책받침, 사진과 테이프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던가.
“그래도 아미 가입을 위해 돈을 줄 순 없어, 꿈도 꾸지 마라. 정말 갖고 싶은 굿즈나 음반이 있으면 생일이나 뭐 크게 칭찬할 일이 있을 때 하나나 두 개 정도는 사줄게. 니들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안돼...”
“정말 너무해, 친구들은 다 아미란 말이야. 나만 아무것도 없어. 왜 맨날 안된다고만 하는 거야. 용돈 모아서 내가 알아서 살 거니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워낙 완강하게 철벽 방어를 해놓은 탓에 그 후로 딸은 아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아미인 친구를 통해 아미봉과 굿즈를 구입하는 것 같았다. 혹은 시험을 잘 봐서, 생일선물로 음반을 요구해 사주기도 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해놓고 PC방에 ‘포도를 따러’ 간 모양이었다. 방탄소년단 응원 색깔이 보라색이라 공연 좌석은 보라색으로 표시돼 있었는데, 좌석 예매에 성공한다는 은유를 ‘포도 딴다’라고 했다. 아미인 친구는 그날, 자정의 초침이 미처 1초가 넘어가기 전, 광클릭으로 좌석을 예매했고 주말에 공연을 보러 갔다. 나의 원천봉쇄로 공연 계획이 무산된 딸은 급기야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었는데...
한 동안 우리 집은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냉랭하고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 3. 2021년 : BTS, 서른 즈음에...
2013년 6월 13일, 방탄소년단 데뷔 이후 8년이 지났다. 2021년 현재, 멤버 중 ‘진’은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되었고 다른 멤버들도 서른 즈음이 되었다. 오늘의 BTS는 어제의 BTS와 사뭇 다르다. 어제의 태양과는 온도차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한국에서의 골목대장이 오늘은 ‘The biggest boyband in the world’(방송인 코난 오브라이언이 언급)로 불리며 독보적인 별이 되어 빛나고 있는 것이다.
2020년에는 <Dynamite>로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hot100에 1위로 올랐고, ‘걸어 다니는 대기업’으로 불린다. 2021년 현대 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한국에 50억 달러(약 5조 7천억 원)의 경제 이익을 안겨다 주기에 그렇다.
팬데믹 이후 발매한 ‘다이너마이트’(2020년 8월)로 세계적인 장기불황 상태에 취업이 어려운 세대, 좌절한 청년세대, 불안감에 빠진 이들에게 응원과 희망을 건네고, ‘라이프 고스 온’(2020년 11월)으로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바람을 노래했다면 ‘버터’(2021년 5월)로 함께 춤을 출 것을 제안했다. 게다가 버터처럼 녹아들어 너를 사로잡겠다는 앙증스러운 고백을 담고 있다. ‘퍼미션 투 댄스’(2021년 7월)를 통해서는 이제껏 꿈꿔온 바람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펼쳐진다.
... When it all seems like it's wrong/Just sing along to Elton John/And to that feeling, we're just getting started...
(모든 것이 다 잘못된 것 같을 때/그냥 엘튼 존의 노래를 따라 불러/그 느낌 그대로 우린 이제 시작이야)
... Ain't nothing that can stop how we move yeah...(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막진 못해)
...’Cause 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 (우리가 춤추는 데 허락은 필요 없으니까)
최근, 나는 BTS의 노래 100여 곡을 몇 번씩 들었다. 노래에 담은 내용이 단순하거나 소모적인 내용이 아니라 좋았다. 그들 나이에 맞게 젊음, 자유, 인생에 대한 목표, 시대정신을 담아내려 했다는 점이 좋았다. 그들의 ‘피땀눈물’ 섞인 노력이 활활 ‘불타 오르네’를 뛰어넘어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했기에 좋았고 때로는 따사로운 '봄날' 같아서 위로가 되었다. '버터'처럼 달콤하기도, '퍼미션 투 댄스'처럼 당당해서 좋았다.
그러나 내가 들은 100여 곡 외에 그들의 발표곡은 300여 곡이나 된다고 한다. 순간,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갔다. 활동기간 8년 5개월여간의 날짜에 300여 곡을 나누어 보니 10일에 한 곡씩 노래가 발표된 셈인데, 그건 어림잡아도 살인적인 경지이다. 함께 그 숫자를 가늠해 본 딸도 새삼 놀라며,
"그러니까, BTS를 쉬게 해야 된다니까. 무릎 연골이 남아나겠어?..." 한마디를 한다.
"그러게..." 나도 괜스레 안타까운 마음을 보태어 거들었다.
‘휴식은 만물이 하늘에 마땅히 요구해야 할 권리다.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움직이는 자는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쓰메소세키) 라는 말도 있듯, 오늘, 여기, 함께 서 있는 발아래에 시선을 향하고 잠시 멈추어 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이 먼길을 걸어왔을까? 꿈결 같겠지만,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겠지만, 이루고 싶은 꿈들이 더 있기는 한 걸까? 의문이 일기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이 아닐까? 마음을 다잡기도 하겠지만,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도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다독였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비어 가는 가슴속에서 이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청춘의 허전함이었다면 BTS의 서른 즈음은 지금의 나의 모습을 사랑하며 계속 더 나은 청춘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도약이고 희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BTS의 신곡이 또다시 빌보드 1위를 할 것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BTS의 인기를 일찌감치 예견했던 남편의 왼손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딸이 한 때 아미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BTS의 서른을 응원할 수 있어서. 그리고 또 다행이다, BTS의 앞으로의 서른을 함께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아서.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