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현 Nov 25. 2021

센서등

< 작당모의(作黨謨議) 단열제 >

   밤이 늦은 시간, 언제부터인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세수를 마치고 침실로 향하면, 아무도 없는 현관의 센서등이 몇 초간 스스로 켜졌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헤어진 그녀가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마치 그녀가 오는 걸 알았다는 듯 스스로 켜지는, 괜히 기분이 꽤나 나쁜 센서등을 속히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며칠 전부터, 센서등의 이상반응이 사라졌다.

   센서등이 잠잠해지면서 우연히도 그녀 역시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내쳤던 건, 만난 지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지독히도 내게 집착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전화를 걸어 내 위치를 확인했고, 그게 거짓은 아닌지 의심해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고, 혹여 길이 엇갈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녀는 편집광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나를 닦달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다가 좀 지독한 방법으로 그녀를 겨우 떼어내긴 했는데, 그날 내가 퍼부었는 심한 욕설을 말없이 듣고만 있던 그녀의 놀라 커진 눈동자를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늦은 밤, 그녀와 친분이 있던 대학 동기 한 명이 그녀가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문자로 알렸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리는 소식에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 나도 모르게 현관 쪽을 바라보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 센서등이 켜진다.

   그녀가 현관에 서서 안절부절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가 빨리 잠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벌써 한 시간이 넘게 현관 센서등의 불은 꺼지지 않고, 헤어지던 날의 그녀처럼 내 눈동자는 잔뜩 커진 채로 얼어붙어, 꺼지지 않는 현관 센서등에 고정되어 있다.




단열제는 작당모의 매거진에서 준비한, '단 열 문장으로 소설을 쓰는 문학제'를 말합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