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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Dec 23. 2021

서프라이즈,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 작당모의(作黨謨議) 12차 문제(文題) :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받아 든 글쓰기는 난감했다. 이제껏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아내와 쌓은 무언가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생일, 결혼기념일도 늘 그냥 넘겼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뭘 했지? 핸드폰 사진을 뒤져보지만 작년도, 재작년도 크리스마스에 무언가를 하고 찍은 사진은 없었다. 혼자 고민을 하다 아내를 끌어들였다.

   "이번 주제는 크리스마스래."

   "그래? 당신 크리스마스로는 쓸게 없지 않나?"

   크리스마스라는 주제에 아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나 보다. 아내 역시 가장 먼저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뒤졌다. 당연히 특별한 게 있을 리가 없다. 크리스마스라고 우리가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결혼을 하기 전 연애 시절까지 거슬러 간 아내가 하나의 사건을 꺼냈다.

   "그거 어때? 내가 크리스마스 때 당신 집 말도 없이 쳐들어 갔던 거."

   아. 맞다. 그런 적이 있었지. 크리스마스라며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살던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던 일. 그래. 크리스마스와 얽힌 일은 그거 딱 하나밖에 없네.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서로 떨어져 따로 보내야 했다. 나는 제주에서, 나보다 먼저 제주 생활을 정리했던 아내는 서울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장거리 연애 탓에 크리스마스를 따로 보내야 했지만, 그게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이전에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정일을 기념한 적은 없었으니까.


   아내가 없는 크리스마스에 별 다른 계획이 있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동네 산책을 하고, 책을 좀 읽고, 저녁에는 연말의 다양한 TV프로를 보며 맥주 한잔을 하는 것 정도만 생각했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친구 하나 없는 제주에서 우리 집을 찾아 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집주인 아주머니인가. 아니면 특정 종교인인가. 설거지를 하느라 젖어있던 손의 물기를 닦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는 평소에는 잘 입지도 않는 정장 차림에 높은 구두를 신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자신의 몸만 한 커다란 쿠션 하나를 들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환한 웃음과 함께 문 앞에 서 있던, 기대가 얼굴에 한 가득이었던 아내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내의 표정은 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자. 나의 서프라이즈야. 크리스마스잖아. 그래서 내가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까지 왔어. 당신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감동을 받았을 거야. 얼른 놀라고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나에게 보여줘.


   "와."

   영혼 없는 리액션.

   "깜짝이야."

   그날 내가 아내에게 깜짝 놀란 기쁜 표정을 지었을 리는 없다. 어이없어 황당해하는 표정이나 잘 숨겼는지 모르겠다. 아내를 반기는 타이밍도 한참이나 늦었을 거다.


   "내가 집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집에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당신 거의 집에 있잖아."

   그건 그렇네. 잘 알고 있긴 하네. 평소에도 대부분 집에 있지만, 특히나 번잡한 크리스마스 같은 날일수록 내가 밖에 나가는 걸 싫어했다는 걸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카톡 한 번도 안 했던 거야?"

   "응. 서프라이즈잖아."


   말 그대로 서프라이즈였다. 아내는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전화 한 통도, 카톡 하나도 내게 남기지 않았었다. 아내가 크리스마스날, 내게 처음 던진 알람은 전화도 카톡도 아닌, 우리 집 현관 초인종이었다. 그날 내가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야 하는 회사의 다른 사람들과 약속이라도 잡았었다면, 그래서 내가  집에 없기라도 했다면, 아내는 어떻게 하려 했을까. 서프라이즈를 하기로 이왕 마음먹었으니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한 겨울에 집 근처에 숨어서 추위를 견뎌내며 나를 기다렸을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 때문에 벌어지는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 싫어.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동이 너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편해. 내가 바라지도 않았던 걸 준비하며 들떴을 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괜히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잔뜩 굳은 표정에 담긴 의미가 아내를 다그쳤고 아내는 이내 풀이 죽었다.


   “나 서프라이즈 별로 안 좋아해.”

   “응.”

   "이제 이런 거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응."

   “밥은.”

   “아직.”

   "배 고파?"

   "응."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김치볶음밥 해줄게. 달걀 올리지?"

   "응. 당연하지."


   당시에 나는 다른 사람이 건네는 마음을 담아낼 그릇이 작았다. 스스로 거부하기도 했었고, 작은 그릇이 넘치도록 마음을 주었던 사람도 없었어서,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그 그릇이 턱 없이 작았다는 걸 모른 채 살았다. 아내의 마음은 늘 나의 작은 그릇 밖으로 넘쳤다.


   아내의 서프라이즈가 정말 고마운 일이었고, 아내의 마음을 기쁘게 받았어야 했고, 그날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을 느껴야 했다는 ,  년이 지난 후에야 이해했다.  안에서 넘쳐 버려지는 아내의 마음을 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그릇을 키웠고, 그렇게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아내의 마음을 온전히 내 그릇에 받아  수가 었었다.




   "근데 당신 이 얘기 글로 쓰는 거 괜찮겠어?"

   글을 한번 읽어 본 아내는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데 서툴렀던, 그래서 아내의 서프라이즈를 허무하게 망쳐버렸던, 아내로 하여금 이 사람이랑 연애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게도 만들었던 연애 초반의 이야기를 염려했다.

   “글 읽고 나서 얘 이런 사람이었어?’ 완전 실망이네. 하는 거 아냐?”

   설마.

   "괜찮아. 다들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 거야. 곧 크리스마스잖아."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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