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이 문제였다. 낡은 캠핑카에서 만들어진 마약이 작은 비닐에 담겨 몇 장의 지폐와 교환되고, 불에 가열되고, 절박한 누군가에게 흡입이 되는. 마약중독자의 희미한 눈빛을 보며 내 눈도 점점 풀려갔다. 이미 빈 맥주캔 두 개가 테이블에 놓여 있는데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 한 캔을 더 꺼냈다. 두 캔에서 멈추겠다는 결심은 넷플릭스 드라마 <브레이킹 베드>에 등장하는 마약중독자들처럼 쉽게 무너졌다. 한 편만 보고 자겠다는 다짐도 힘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엔딩 화면이 나오자마자 홀린 듯 리모컨을 손에 쥐고 이어 보기 버튼을 눌렀다.
평소의 다른 아침보다 알람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런 날은 특히나 몸이 무겁다. 테이블 위는 전날의 흔적들로 너저분했다. 어제의 방탕한 밤이 덕지덕지 붙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커피를 내렸다. 몽롱한 정신이야 커피로 깨운다지만, 몸이 문제다. 몸은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오늘, 달릴 수 있으려나. 창밖으로 내다본 하늘은 마치 한국의 가을 하늘처럼 희고 파랬다. 구름은 검은 비를 품지 않았다. 우기라더니. 비 핑계도 물 건너갔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운동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기미 생긴다며, 그럼 나이 들어 보인다며 한국에서 아내가 챙겨준 선크림을 손에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하루쯤은 빼먹어도 괜찮겠지. 간만에 비타민 D도 얻을 겸.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러닝화를 신었다. 혹시나 해서 창 밖을 한번 더 내다봤지만, 역시나 비가 내릴 기미는 없었다. 우기라더니.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문을 나섰다.
언젠가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반드시 건강해야 한다고. 건강하지 않으면 나중에 돈이 든다고. 그러니 운동은 빼먹지 않고, 매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내가 먼저 시작한 달리기인데 지금은 아내가 더 열심이다. 달리고 나면 늘 체중계 위에 올라가고, 체중계가 가리키는 눈금에 따라 기뻐하기도, 때론 실망하기도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건강보다는 다이어트가 더 우선인듯 싶긴 한데, 아무튼 아침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아내 눈치 한번 보는 나를 공원으로 끌고 나간다.
달리기를 하는 아내의 숨은 목적이 다이어트, 그러니까 신체적인 쪽에 있다면, 나의 경우는 아내와 달리 신체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에 있다. 의미 없는 방탕한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아침이면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달린다. 어제의 죄를 사하여 주세요. 내뱉는 숨이 거칠어질수록 어제의 죄악이 희석되는 듯하고, 흘린 땀만큼 어제의 악행이 씻긴 듯하다. 달리기는 전날 방탕한 생활의 면죄부가 되고, 오늘 또 다른 방탕함을 허락하는 증서가 된다.
그러니까 오늘은 달려야 했다. 비가 왔다면 숙소 건물의 가장 위층에 있는 러닝머신에서라도 달려야 했다. 어제의 허물을 벗겨내야 했다. 출발 지점에 서서 스트레칭을 한번 하는데 외국인 두 명이 나를 지나쳤다. 그들을 앞에 두고 달리기 시작했다. 곧 따라잡겠거니 생각했는데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승부욕이 생기는 순간이긴 하지만, 고이 보내준다. 5km를 넘게 달려야 하는데 괜히 속도를 올렸다가는 나중에 죽을 만큼 힘들어진다.
도착지점에 들어와서 달리기 앱을 정지시켰다. 5.51km를 달리는데 31분 2초가 걸렸다. 평균 페이스는 1km 당 5분 38초. 어제 달렸던 시간보다 조금 빨라졌다. 숨은 턱에 차 있고,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고해성사가 끝났다. 방콕의 하늘은 오래간만에 깨끗했고 어제의 죄는 말끔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