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여행지는 노르웨이였다. 그곳을 신혼 여행지로 고른 이유는 딱 한 가지, 그곳엔 오로라가 있기 때문이었다. 노르웨이는 오로라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말도 안 되게 물가가 높고, 연어 빼고는 맛있는 음식이 없는 나라였다. 비싼데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우울하다. 신혼여행이었고, 그래서 평상시 다른 여행과는 달리 씀씀이가 조금은 커도 됐지만,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은 햄버거 하나를 몇 만 원씩 주고 사 먹을 자신이 없었다.
하루 중 한 끼는 숙소에서 해 먹기로 했다. 취사가 가능한 숙소였다. 한국에서 짐을 싸면서, 아내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캐리어에 누룽지와 볶음김치를 담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웃었다. 아내가 웃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나도, 여행의 목적은 먹는 데 있다며, 하루가 세 끼 밖에 안된다는 걸 아쉬워하는데, 잘 참았다. 한 끼니를 숙소에서 해결하는 건, 생각보다 괜찮았다. 매 끼니 뭘 먹어야 할지의 고민도 줄고, 먹을 곳을 찾아 나서야 하는 수고도 줄고, 무엇보다도 식비가 줄었다. 그게 7년 전이다. 지금도 어쩌다 하는 신혼여행 때의 이야기는 두 가지이다. 오로라와 아침마다 먹던 누룽지. 그 이후로, 아내와 떠나는 여행에서 하루에 한 끼니는 집밥을 해 먹었다. 주로 아침이었다.
방콕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건 장보기였다. 일단 수건 4장이 필요했다. 수건을 사는 김에 아침식사 거리도 둘러봤다. 익숙한 식재료들이 보였다. 식빵과 토마토, 바나나. 그리고 식빵에 바를 크림치즈, 우유. 그냥 우유만 마시면 아쉬우니 그래놀라도 한 봉지 집고, 달걀은 열 개들이 묶음으로 담았다. 아침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혼자 나와 있어도,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있단다. 아침 사진을 본 아내는 그날 먹은 자신의 아침 사진을 내게 보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틀린 그림 찾기 같았다. 아, 오이 대신 바나나가 있는 거? 난 왜 방콕에까지 와서 이렇게 아침을 차렸을까. 해외에 나와 있으면서도 아내와 똑같은 아침을 먹고 있다는 게 괜히 분했다. 내가 안일했다. 내일의 아침 사진은 아내가 부러워할 만한 걸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쇼핑몰의 푸드코트를 찾았다. 선불카드를 미리 사고 원하는 음식을 선불카드로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30개 가까이 되는 음식 부스가 각자의 메뉴를 팔고 있었다. 너무 다양해서 고르는데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북적이는 부스 한 곳을 정하고, 가장 만만해 보이는 사진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질 돼지고기 볶음 덮밥.(사실 이름을 모른다. 내가 그냥 지은 이름이다.)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는 아침 사진을 내게 보내지 않았다. 못 보낸 거겠지. 보냈더라도 어제의 사진과 다르지 않았겠지. 근데 이거 꽤나 맛있었다. 그리고 은근히 매웠다. 매워서 입안이 얼얼할 때마다 수박을 얼음과 함께 갈아 낸 음료를 마셨다. 얼마였는지 영수증을 보니 바질 돼지고기볶음 덮밥은 47밧, 수박주스는 25밧이었다. 이 근사하고 맛있는 아침식사의 가격이 72밧이었다.
문득 계산을 해보고 싶어졌다. 어제 차려먹은 아침은 얼마가 들었을까. 숙소로 돌아와 어제 장보고 받은 영수증을 찾았다. 일단 우유. 89밧이고, 이 정도면 여섯 끼 정도 먹을 양이니 나누면 15밧. 토마토는 24밧이고 2.5 끼니의 양이니 끼니당 10밧.(난 왜 방콕에서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재료 하나하나의 가격을 끼니로 나누고 더했다. 계산이 끝났다. 어제 먹었던 아침 식사의 가격은 무려 95밧이었다.
장을 봐 오고,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고, 달걀을 삶고, 토마토를 씻고, 바나나를 먹기 좋게 썰고, 식빵을 토스트기에서 굽고, 그렇게 아침 준비를 해서 먹고, 다 먹은 후에는 귀찮은 설거지를 하는, 그런 나의 시간과 노동력은 아침 식사의 가격에 단 1밧도 추가하지 않은 건데.
아니지. 가격만 놓고 따질 순 없는 거겠지. 집에서 먹은 게 좀 더 건강식이었겠지. 내 시간, 노동력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또...
위안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집밥은 필요 없다. 아침 달리기를 하고 씻고 나면 쇼핑몰의 푸드코트로 간다. 푸드코트에는 음식 부스가 30개나 있고, 한 번씩만 먹는다 해도 한 달이 걸리고, 먹고 또 먹어도 선불카드의 잔액은 더디게 줄어든다. 다른 사람의 쟁반에 담긴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같은 걸로요, 하기도 하고, 그냥 부스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고르기도 한다. 테이블로 앉아 먼저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오늘의 아침식사는 얼마였는지 확인하며 뿌듯해한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첫날의 성급함이 보인다. 절반도 넘게 남은 크림치즈와 아직 봉지가 묵직한 그래놀라, 그리고 6개의 날달걀이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선불카드는 언젠가 바닥을 보일 거고, 매일 먹으면 태국 음식도 언젠가 질릴 테니, 뭐, 일단은 그대로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