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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l 25. 2023

잠시 쉬어가는 베로나

   원래 피렌체 다음 일정은 이탈리아의 북부, 돌로미티였다. 스위스처럼 알프스의 설산을 바라보며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인데 물가는 스위스만큼 비싸지 않아서 저렴하게 알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그래도 이탈리아의 다른 소도시들보다 비싸긴 하다.). 다만 시기가 문제였다. 피렌체 일정이 끝나는 날은 6월 초, 검색을 해보니 돌로미티는 트레킹을 할 수 있을 만큼 알프스의 눈이 녹고, 그래서 곤돌라, 리프트가 여름 운행을 시작하는 6월 중순은 되어야 제대로 된 여행이 가능했다. 어딘가에서 6월 중순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6월 중순까지는 꼭 열흘이 비었다.


   구글 맵으로 피렌체에서 돌로미티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도시를 살펴봤다. 그 길 정확히 중간 즈음에 베로나라는 도시가 보였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의 도시였다. 지도에서만 보면 위치가 너무 좋아 보였다. 베로나를 중심으로 지도의 왼쪽으로 밀라노, 오른쪽으로 베네치아가 있었다. 이곳에서 열흘을 버티자, 베로나가 영 지루하면 기차 타고 밀라노도 가 보고 베네치아도 가 보고. 아는 것 하나 없던 베로나에서의 열흘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베로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라는 건 이곳에 오고야 알았다. 어쩐지 길가 펜스마다, 다리 난간마다 하트모양 자물쇠가 많이도 걸려있더라.


   베로나에서의 첫날, 난 이곳이 마음에 들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아디제강(자꾸 아제다강이라고 불렀다.)이 도시를 S자로 휘감고 도는 산책길을 따라 찰피나무(자꾸 피찰나무라고 말했다.)가 나무 그늘을 시원하게 드리웠고, 그 아래로 찰피나무 꽃의 달콤한 향이 가득했다. 그제야 피렌체의 좁은 길에는 나무가 없었다는 걸, 달콤한 꽃내의 나무 그늘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래서 피렌체가 답답했구나.


   오래된 도시를 흐르는 강,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강 가,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도심, 높지 않은 중세의 건물, 사람들로 번잡하지 않은 길, 베로나는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해 오던 유럽의, 이탈리아의 도시 모습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사랑이 있는 곳, 모차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살리에리가 태어난 곳, 매년 여름이면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곳.

로미오가 오르던 줄리엣의 발코니, 흰 돌을 박아 넣은 횡단보도.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연인들을 위한 알록달록한 자물쇠를 보며 자물쇠 채우고 나서 열쇠는 어찌하나? 버리나? 라고 장모님이 물으셨을 때 저는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르고요, 저 만나기 전에 수많은 오빠들하고 자물쇠 채워봤을 따님이 잘 알지 않을까요? 라고 대답하면 무슨 소리야. 나한테 오빠는 당신 하나뿐이야. 라며 아내가 발끈하는.


   저 강 이름이 아제다던가? 물을 때마다 아니, 아디제 강, 하며 정정해 주던 아내가 계속 찰피나무를 피찰나무라 말하고, 그런 아내를 보며 피찰이 아니라 찰피, 라고 바로 잡아주시던 장모님이 다음날 또다시 저 강이 아제다 강이가? 하며 헷갈려하시는. 결국 나중에 가서는 아디제 강이라고 제대로 말해도 아니에요, 아제다강이에요, 찰피나무 향 너무 좋다, 라고 옳게 말해도 찰피가 아니라 피찰이라니까, 하고 우기는, 그런 시답잖은 농담을 끊임없이 할 만큼 여유롭던 곳.

언덕에서 내려다 본 베로나.


   다시 계획을 세운다면 피렌체 한 달 말고 베로나 한 달을 할 것 같아, 피렌체는 열흘만 하고, 라는 말에 모두가 그래, 맞아, 베로나 한 달, 하며 맞장구를 칠 만큼 셋 모두 베로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근데 메로나 먹고 싶지 않아? 베로나에서 메로나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하는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도 안 웃겨 뭐래, 하는 야유 없이 그럼 베로나 다시 올 때 메로나, 라는 뻔한 농담으로 받아칠 만큼 베로나에서 우리는 유치 찬란했다. 넉넉했다.


   돌로미티로 가기 전 열흘을 때운다는 생각으로 찾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베로나인데, 로마에서, 피렌체에서 지쳤던 마음을 이곳에서 돌볼 수 있었다. 기념으로 하트모양 자물쇠라도 하나 사서 줄리엣이 건넜을 다리 어딘가에 달아 놓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베로나에서의 열흘이 짧게만 느껴졌다.




이번 매거진은 idle​​​​​​​​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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