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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Feb 09. 2021

결혼 6년 만에, 아내가 처음 한 요리.

‘저기. 있잖아. 아침 내가 한번 해볼까?’

이런. 기어이 올 것이 왔다. 매거진에 음식 만드는 글을 쓰면서부터 아내가 부엌을 기웃거리는 게 심상치 않긴 했다. 깨 좀 갈게 하고 식탁을 꾸미게 하고 음식 사진 찍는 걸 맡기면, 기웃거리던 마음이 진정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침을 직접 해보겠다니. 긴장이 됐다.

‘뭐를 해보려고?’

괜히 뜸을 들이며 물어봤다. 아내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프리타타라고 이탈리아 가정식이래.’

프리타타? 전에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다. 아 언뜻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그렇지. 내가 몇 번 만들던걸 따라서 해 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름도 생소한 음식을 도전하겠다니. 만들면 결국 함께 먹어야 하는 내 생각은 안 하는 건가.

‘너 이탈리아도 안 가봤잖아.’

내가 지금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했다. 내가 단번에 ‘그래.’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낌새를 눈치채길 바랐다.

‘당신도 이탈리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파스타 해주잖아.’

논리마저 단호하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하는 아내다. 어쩔 수 없다.




방울토마토 네알, 베이컨 두줄, 양파 반개, 시금치 한줌, 우유 반컵을 위해 장을 봤다.

‘만드는 법은 알아?’

나를 위해서 하는 질문이다. 몇 번이고 레시피를 반복해서 확인해보라는 의미이다.

‘그럼. 내가 다 검색해봤지. 쉽더라고.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채소들 없애기 딱 좋아서 이탈리아에서 집밥으로 많이 먹는데.’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없애기 좋은 음식이라고? 뭔가 이상했다. 전날 프리타타의 재료를 사겠다며 마트에서 장을 봤었다. 봉지에 잔뜩 담긴 시금치를 사고, 망에 아홉 개가 든 양파도 샀다. 방울토마토는 네 개면 충분하다지만, 당연하게도 낱개로는 팔지 않았다. 베이컨은 1+1 묶음이었다. 우유야 뭐. 그냥 마시면 되니.

‘자투리 채소들로 냉장고가 꽉 차겠는데?’


채소를 다듬고, 올리브유와 버터로 볶고, 부은 달걀물에 방울토마토와 치즈를 얹고.

‘먼저 양파랑 베이컨을 볶으면 돼.’

‘시금치는 많아 보여도 금방 숨이 죽어.’

‘베이컨이 짜니까 소금은 조금만 넣어도 괜찮아.’

아내의 말이 많아졌다. 나에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려 하는 건 아닐 테고. 자신이 만드는 순서를 잊지 않기 위해 혼자 되뇌는 걸 테다. 긴장하고 있다는 거다. 나도 덩달아 옆에서 안절부절 눈을 뗄 수가 없다.


다 볶아진 채소위에 우유를 넣은 달걀물을 붓는다.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를 올리고, 치즈를 정성껏 올린다. 치즈 정도야 그냥 흩뿌려도 될 것 같은데 하나하나 꼼꼼하다.


180도에 15분.

‘이제 오븐에서 익히기만 하면 돼.’

15분 동안 익기만 기다리면 된다던 아내는 그 시간 동안 앉아있지를 못한다. 부엌을 이곳저곳 서성이다가 오븐 속을 들여다보고, 방금 전에 들여다봤으면서 얼마 안 되어 또다시 들여다보고. 15분이 지나면 스스로 알람이 울릴 텐데 오븐에 표시되는 남은 시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레시피에 ‘15분 동안 익어가는 모습을 매의 눈으로 째려보세요.’라고 쓰여 있지도 않았을 텐데. 덕분에 나도 앉아있지를 못한다.


완성. 그럴듯하다. 사진을 위해 파슬리도 뿌린다.

오븐 속에서 15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80도의 열기에서 15분을 견디고 나온 프리타타는 오븐 속에 들어가기 전 어설픈 모습이 아니었다. 노릇노릇하게 잘 읽은 달걀과 빨간 방울토마토 사이로 자리 잡은 치즈.

‘와. 그럴듯하다.’

그제야 아내의 표정이 밝아진다.

‘거봐. 내가 쉽다고 했잖아.’

그릇을 식탁으로 옮기고 칼로 자르려는데 아내가 말린다. 파슬리를 꼭 뿌려야 한단다.


오늘은 아내가 한 음식이라 다른날 보다 사진이 많다.

네 조각으로 자른 프리타타를 포크로 한입 먹어본다. 부드럽다. 달걀 속에 켜켜이 있는 양파와 시금치도 잘 어울린다. 심심할 수도 있는 맛을 베이컨 조각이 짭조름하게 잡아준다.

‘와. 맛있네.’

의심으로 가득했던 내 표정이 풀리는 걸 확인한 아내는 그제야 안심한 듯 먹기 시작한다.

‘어때. 내가 가끔 아침 만들어 줘도 괜찮겠어?’

의기양양하다. 얼른 그렇다고 말하라는 표정이다.

‘응. 뭐. 이 정도 맛이 앞으로도 계속 보장된다면야.’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아내가 만든 프리타타를 다시 보니 좀 불안하다. 아내가 만든 음식이 이 정도로 결과가 좋을 줄 몰랐다. 앞서 내가 만들었던 음식들이 이 프리타타 하나로 묻힐 것만 같은 기분이다. 글을 올리고 난 후의 독자분들의 반응도 걱정이 앞선다. ‘요리는 이제 아내분에게 맡기세요.’라는 반응이면 어떡하지. 맛있게 잘 먹고도 기분이 묘한 나에게 아내가 쐐기를 박는다.

‘맛있었다고도 꼭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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