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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Feb 18. 2021

아내와의 요리 배틀.

‘당신 글에 댓글 또 달렸는데. 봤나? 엄청 맛있어 보인데.’

아내가 만든 프리타타 글을 발행한 이후, 아내는 나보다 더 자주 내 브런치를 들락거렸다. 라이킷 개수를 일일이 확인하고, 달리는 댓글들을 마치 자신에게 건넨 말인 듯 꼼꼼히 읽었다.  

‘이 댓글은 봤어? 나보고 완전 프로급이래.’

프로급이라니. 나도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프로급까지는 아니지 않나? 내 솥밥이나 막국수보다는 한 수 아래 아닌가? 보기엔 그럴듯해도 맛의 깊이라는 게 또 중요한 건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괜히 심란한 나를 옆에 두고, 아내의 자신감은 한껏 커졌다.

‘내가 다음엔 에그인헬 해 줄까?’


문제의 글이다.


사실 아내가 처음 아침을 직접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실패한 아내의 요리를 소재로 글을 써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부엌칼 아무나 잡는 거 아니다.’ 혹은 ‘요리를 우습게 본 자의 최후’ 같은 제목도 빠르게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나의 불순한 기대를 저버렸고, 머릿속에서 나 혼자 써 내려가던 실패 이야기는 글로 나올 수 없었다.


아내가 만든 요리 글은 반응이 좋았다. 발행 후 라이킷과 댓글이 늘어나는 속도도 이전 글보다 빨랐다. 덕분에 아내도 덩달아 바빠졌다.

‘지금 조회수는 몇이야?’

아내는 라이킷 수나 댓글을 먼저 확인하고는 스스로는 확인할 수 없는 조회수를 수시로 내게 물어봤다. 지금까지 수십 개의 글을 발행했지만, 이 글만큼 아내가 많은 관심을 보인적은 없었다.

‘아마 이 글 조회수 절반은 너가 올린 걸 거야.’

 

끊임없이 알람이 울렸던 그 글은 결국 ‘은퇴부부의 아침밥상’ 매거진의 모든 글을 통틀어서 조회수, 라이킷 수, 댓글 수 모두가 가장 높은 글이 됐다.




아내의 프리타타 이후 쓰려던 음식은 스크램블 에그였다. 토스트기로 구운 식빵과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따듯한 커피. 아침밥의 소재로 쟁여 놓았던 음식이었다. 간단한 아침밥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프리타타 글의 반응을 보고 나니 뭔가 아쉬웠다. 스크램블 에그라니. 왠지 초라해 보였다.


가벼우면서도 뭔가 고급져 보이고, 쉬워 보이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고, 흔하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 그런 걸 찾아야 했다. 그런데 찾더라도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으려나.


무리수를 던져본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요리가 손에 익어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 하려고 했던 것.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요리 좀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아내의 프리타타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


제빵.

 

공부가 필요했다. 잘 보이는, 눈높이가 맞는 곳에 붙인다.

식빵을 만들 사각틀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식빵을 만드는 수십 개의 글을 읽었다. 너무 많은 글을 읽으니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빵틀로 만든 글 하나를 고르고, 그 글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발효시간이 너무 길다. 아침밥인데, 만드는데만 3시간이 훌쩍 넘는다. 시작부터 불안하다.


제빵의 기본은 계량.

350그램의 밀가루는 생각보다 많았다. 원래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 건가. 호박전을 만들 때의 밀가루 양보다 네다섯 배는 돼 보였다. 걱정이 되지만, 하라는 대로 한다. 이스트와 소금, 설탕도 그램수를 정확히 지켜서 넣는다.


1차 발효. 너무 커지는거 아닌가 하며 놀랐다.

반죽을 위해 넣어야 할 우유는 230ml. 이번엔 우유의 양이 너무 적은 듯했다. 호박전 만들 때 넣었던 물 양의 반도 안됐다. 그냥 믿고 하자. 그놈의 호박전은 잊어야 한다.


30분간의 반죽이 시작됐다. 주먹으로 짓누르고, 다시 들어 올려 양손으로 치댔다.

‘반죽기 하나 사야 하는 거 아냐?’

10분 정도가 지나고 점점 지쳐가는 나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반죽을 한 지 20분 정도 되었을 땐,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1차 아침식사.

반죽을 마치고 한 시간 동안의 1차 발효를 기다리면서 1차 아침식사를 했다. 밥을 만들면서 중간에 밥을 먹었다. 이게 뭐라고.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식빵이 고작 2,800원이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중간발효 15분을 지나 다시 50분간 2차 발효.

1차 발효가 끝난 반죽을 3 등분한다. 밀대로 밀어 가스를 빼낸다. 발효가 되는 거라 그런지 막걸리 냄새가 나는 듯하다. 둥글게 말아 모양을 잡는다. 사각틀에 넣고 2차 발효를 시킨다. 벌써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었는데, 5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언제 먹을 수 있을까.


반죽은 사각틀에서 더욱 부풀었다. 검색에서 본 것처럼 발효되면서 스스로 커지는 반죽이 대견했다. 그래. 넌 너 할 일을 해라. 난 내 할 일을 할 테니. 2차 발효시간이 15분 정도 남았을 때 오븐을 예열한다. 2차 발효가 끝나고, 사각틀의 뚜껑을 닫아 190도로 달구어진 오븐 속으로 넣는다. 지금까지도 계속 기다리는 게 일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던 모양이 아니다. 빵집에서 파는 정확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나올 줄 알았다.  

떨렸다. 오븐에서 꺼낸 사각틀은 묵직했다. 심호흡을 한다. 지켜보던 아내도 옆에서 말이 없다. 천천히 사각틀의 뚜껑을 연다.


아. 생각했던 모양이 아니다. 빵집에서 파는 정확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나올 줄 알았다. 다시 불안해진다.

‘오오. 그럴 듯 해!’

아내는 이 정도도 기대하지 않았었는지, 옆에서 표정이 밝다.


아직 뜨거운 식빵을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자른다. 미끈한 칼날 이어선지 잘 잘리지가 않는다. 나무 도마와 식빵 자르는 칼을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잘린 식빵의 속은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부드러웠고, 결대로 잘 찢어졌다. 그래 괜찮아. 맛만 있으면 되지.


완성. 4시간이 걸린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아침 10시부터 준비한 아침식사는 오후 2시가 넘어서 완성되었다. 4시간이 걸렸다. 아내가 만든 프리타타를 뛰어넘어 보겠다며 달려들던 의욕은 진작에 사라졌다.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라는 이름이 민망하다. 이미 시간은 런치도 한참 지났다.


‘맛있어!’

진짜 맛있어서인지, 기다리느라 배가 고팠어서인지 아내의 포크질이 빠르다. 식빵을 찢어 버터도 듬뿍 바른다.

‘그래? 빵집에서 파는 것처럼 괜찮아?’

‘아니 그건 아닌데, 이 정도면 처음 한 것 치고는 맛있는 거지.’

그건 아니란다. 이미 내 입맛으로도 빵집에서 파는 것만큼은 안 된다는 걸 느꼈으면서도 굳이 왜 물어봤을까. 그래. 인정한다. 내가 졌다.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로는 아내의 프리타타를 넘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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