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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Feb 24. 2021

요리에 빠진 아내.

‘자. 그럼 이제 브리핑을 할게.’

결혼 후 두 번째인 요리를 시작하기 전, 아내는 오늘 먹을 아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도한 프리타타를 가뿐히 성공한 후, 아내는 기가 올랐다. 직접 만든 식빵을 필두로 한 내 아메리칸 브렉퍼스트의 저조한 성적 이후, 글로 쓸 다음 메뉴를 쉽게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내는 그 기회를 놓칠세라 수시로 추파를 던졌다.

‘내가 할까?’

‘내가 해도 되는데.’

‘뭘 고민해. 그냥 날 시켜.’

요리에 이렇게나 적극적이라니.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결혼 이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아내의 새로운 모습이 낯설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아내에게 맡길까. 어차피 간단한 한 끼 정도의 요리는 아내도 할 수 있길 바라긴 했다. 그래야 내가 약속이라도 생겨서 밥을 챙겨주지 못할 때, 혹시 굶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테니. 그래. 그럼 한번 더 네가 해볼래?




‘이건 중동지방에서 먹는 집밥이야.’

브리핑이 시작됐다. 이번엔 중동인가. 굳이 이렇게 세계 각지를 떠돌지 않아도 될 텐데.

‘이름은 에그인헬. 지옥에 빠진 달걀이란 뜻이지.’

이런 음식은 대체 어디서 알아 왔을까. 내가 처음 시도했던 요리는 감자전이었고, 그다음은 된장찌개였다. 보통 처음엔 이렇게 익숙한걸 먼저 하지 않나.

‘잠깐 질문. 혹시 전에 먹어본 적은 있어?’

직접 하는 건 처음이더라도 전에 먹어 본, 그래서 맛 정도는 아는 음식이길 바랐다.

‘아니. 안 먹어 봤지. 이거 파는데도 거의 없을걸?’

발랄하기도 하여라. 그 대답이 저렇게도 해맑을 일인가. 그래 그저 한끼일 뿐이다. 그냥 발랄하게 한끼 먹지 뭐. 첫 요리였던 프리타타도 기대 이상으로 잘했으니까. 첫 요리 때처럼 작은 기대만 갖는다면 크게 실망할 일은 없겠지. 다만, 왜 수많은 음식 중에서 에그인헬인지가 궁금했다.

‘전에 사진으로 봤는데 이쁘더라고.’

아. 그런 이유였구나.




어째 지난번 프리타타와 재료가 거의 비슷하다. 사진에서는 가장 중요한 달걀을 빼먹었다.

자신 있게 브리핑을 끝낸 아내는 냉장고에서 남은 자투리 채소들을 꺼냈다. 자투리 채소들을 넣어 만드는 중동의 집밥. 오늘은 취지에 맞게 그럴듯하다. 에그인헬을 준비하면서 새로 산 재료는 홀토마토 캔뿐이다. 꺼내어 놓은 재료들이 전에 본 듯한 느낌이다. 프리타타를 만들 때의 재료들과 거의 비슷했다.

‘이번엔 중동이라면서. 이탈리아 때랑 재료가 너무 비슷한데?’

재료만으로는 중동과 이탈리아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원래 자투리 채소 이것저것 넣는 거거든. 이탈리아 때 하고 남은 채소들이 이것들이니 비슷한 게 당연한 거야.’

아 그렇구나. 재료가 저거뿐인 우리 집 냉장고가 문제였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비슷한 재료를 넣어서 만드는 음식이니 맛은 이탈리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안심이 됐다.


전에 본 듯한 전개.

올리브유를 두르고 간 마늘 한 스푼, 편 마늘 한 줌 넣어 볶는다.

‘편 마늘만 넣어도 되는데, 간 마늘도 같이 넣으면 마늘향이 더 잘 배.’

프리타타를 만들 때에도 그랬지만, 아내는 에그인헬을 만들기 위해 수십 개의 레시피를 찾아 읽었다. 한두 개의 레시피만 찾아 읽고 바로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는 나와는 다르다.


아내는 이론에 충실했다. 찾아본 수십 개의 레시피들 중에 분명 저 마늘향 이야기도 들어있었을 거다. 지금까지 매거진에 음식 글을 쓰면서 사소하더라도 무언가 요리 정보를 적은 게 있었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막상 떠오르는 건 ‘하라는 대로 한다.’,  ‘적당히 한다.’, ‘그냥 한다.’로 맺은 문장들 뿐이다. 이래도 되나 싶긴 했지만, 이게 나의 스타일이니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다시 마음을 먹는다.

‘읽으시는 분들이 내 글에서 정보를 원하진 않으실 거야.’

어차피 부족한 능력 탓에 드릴 정보도 없긴 하다.


지옥에 달걀을 빠뜨린다.

다 볶아진 채소 위에 홀토마토를 붓는다. 빨간색이 채소들을 뒤덮는다. 지옥이 완성되었다. 이제 달걀을 지옥으로 보낸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지옥에 빠진 달걀 사이로, 치즈를 정성껏 올린다. 치즈 정도야 그냥 흩뿌려도 될 것 같은데 하나하나 꼼꼼하다. 치즈를 뿌리는 얘기는 이탈리아 때에도 썼던 느낌이지만 기분 탓이다. 중동과 이탈리아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제 달걀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돼.’

달걀물 대신 홀토마토를 넣은 것 말고는 지난번 프리타타와 딱히 다른 점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기분 탓이겠지. 중동과 이탈리아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분명할 테니.


완성. 예전에 만들어 놓은 식빵이 한자리를 차지한다.

달걀이 하얗게 익고, 치즈가 전부 녹으면서 아내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장갑을 낀 손으로 아직 보글보글 끓고 있는 에그인헬을 식탁으로 옮기고, 마지막 중요한 의식인 듯 파슬리를 곱게 뿌렸다. 흰색과 빨간색, 초록색이 보기 좋다.


며칠 전 만들었던 식빵을 토스트기에 구워 함께 놓는다. 처음 만들었을 때 아쉽게 느껴졌던 식빵은 하루가 지나면서 뜨거운 온기가 걷히니 막 했을 때보다 훨씬 그럴 듯 해졌다. 식칼로도 부드럽게 잘리고 빵이 내는 풍미가 늘었다. 조금 더 자랑하고 싶지만, 오늘은 아내가 만든 요리가 주인공이니 이 정도까지만 하고 참아본다.


아내의 에그인헬과 나의 식빵.

앞접시로 덜어내 뜨거움을 후후 불어 달래면서 입에 넣는다.

‘어때? 괜찮아?’

아직 씹기도 전인데 아내는 급하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니 더 기다리지 않게 바로 답을 준다.

‘맛있어. 프리타타랑은 또 다르네.’

그제야 아내도 한입 먹는다.

‘신맛을 잡으려고 파마산 치즈를 뿌렸는데 아직 덜 잡힌 것 같기도 해.’

신맛은 파마산 치즈로 잡는 거구나. 좋은 정보다.

‘빵이랑 같이 먹는 거라면서. 함께 먹으니 딱 맞아. 맛있어.’

하지만 아내는 계속 무언가 아쉬운듯한 표정이다. 다른 맛을 상상했던 모양이다.

‘전에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어차피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르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내의 요리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란 예감이 든다. 골똘한 표정으로, 뭔가 꺼림칙했던 조리과정,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의 아쉬움, 다시 한번 더 하면 잘할 것 같은 느낌.


내가 만들었던 음식이 아쉬웠을 때 내 스스로 짓던 표정이, 아내의 얼굴에서 읽혔다. 나도 그 표정을 지었을 때 온통 다음 요리 생각뿐이었다. 내심 끝이길 바랐지만 아내의 요리는 이제 시작일 거다. 아쉬움이 다음 요리의 동력이다. 이걸 원했던 건 아닌데. 내 리액션이 부족했나. 좀 더 강하게 맛있었음을 어필할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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