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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Mar 15. 2021

은퇴 부부의 아침밥상

에필로그

음식과 음식에 담긴 이야기.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밥상에 올린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과 함께 쌓아온 기억을 아내와 이야기하는 시간. 그 일상이 담긴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음식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글이지만, 조연이 더 돋보이는 영화처럼, 음식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음식이란 본디 살기 위해 배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이니까요. 아침밥 한 끼를 이야기하지만, 저의 기억, 그리고 아내와 함께 나눈 기억들이 버무려진, 그런 글이 어느덧 14개가 쌓였습니다.


어설픈 솜씨로 서툴게 만들었던 음식이지만 저희에게는 늘 만찬이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지만,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건, 그 20분이 전부 인 게 아닙니다. 식사는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설거지를 끝내면서 마무리되니까요. 그럼 한 시간 남짓. 만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글을 쓰면서 만들었던 음식들은 또 다른 기억으로 서로에게 새겨졌습니다. 이제 오므라이스를 먹으면, 달걀지단 위로 일자로 그어버렸던 케첩을 이야기할 테고, 프리타타를 먹으면, 처음 아내가 요리에 도전하면서 조마조마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하겠지요. 훗날, 아내와 저, 서로 같은 기억을 꺼내어 줄 음식들이 글의 수만큼 또 늘었습니다.




제가 만든 음식들로 채워질 줄 알았던 매거진에 아내의 음식이 끼어든 건 저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결혼 후 6년 동안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랬던 아내가 요리에 관심을 보이다니요. 덕분에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어요. 예측이 안 되는 삶은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즐겁죠.


그 이후에 아내는 하나의 음식을 더 만들었어요. 이번엔 스위스입니다. 뢰스티라는 이름이고요. 역시나 전 이번에도 처음 듣고 보는 음식입니다.

 

실패.

감자와 양파를 채 썰고, 버터와 함께 구워내는 음식입니다. 아내의 설명으로는 재료들이 서로 엉켜 붙어서 팬케이크처럼 나와야 한다는데, 서로 뭉쳐지지 않고 제각각 따로 놀아 감자볶음처럼 돼버렸어요. 감자와 양파가 제 스스로 쉽게 뭉칠 리가 없죠. 아내의 요리실력은 아직 멀었습니다.

‘부침가루를 써 보는 게 어때?’

내키지 않은 표정입니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전분가루를 넣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레시피 글을 읽었다고 해요. 앞선 두 번의 요리로 자신감 정도는 차고도 넘치니, 전분가루 따위는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감 하나만으로 덤비기에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죠.


부침가루를 넣고 재도전.

결국 아내는 자신감을 덜어내고 대신 부침가루를 채웠습니다. 실패한 뢰스티는 부엌에서 선 채로 함께 먹어 없애 버리고, 재도전을 합니다. 약한 불에 5분, 뒤집어서 다시 5분. 부침가루의 도움으로 이제는 한 덩어리로 잘 뭉쳤어요. 뭉치든 안 뭉치든 맛은 차이가 없겠지만, 아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습니다.


완성. 물론 왼쪽입니다. 오른쪽은 무료이미지 사이트에서 가지고 온 뢰스티 모습이고요.

미리 준비한 소시지와 달걀프라이를 더해 뢰스티를 완성합니다. 아. 아직 남았습니다. 아내의 요리는 파슬리를 뿌려야 마무리가 돼요. 달걀 프라이 위로 곱게 파슬리를 뿌립니다.


이제 완성입니다. 하지만 완성된 사진만 보시면 ‘이게 뭐지. 그냥 감자볶음인데?’ 하실 분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실제 뢰스티의 모습을 함께 넣어 봤습니다. 맛 설명은 굳이 필요 없을 듯해요. 예상하시는 바로 그 맛입니다. 이름은 스위스에서 온 낯선 뢰스티이지만요.


아내의 세 번째 요리이면서 매거진의 마지막 음식입니다.




 음식 글을 쓰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처음 올렸던 간장계란밥을 시작으로 마지막 글인 누룽지까지 오면서 많은 분들도 함께 즐거워해 주셨습니다. 읽히고 싶어 쓰는 글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라고 하면서 시작했어요.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을 음식 글을 저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채워나가는 게 걱정이 되기도, 죄송스럽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해요. 쓰고 싶어서 쓴다 했지만, 역시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미리 준비한 대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즐겁게 쓰는 시간을 더 길게 가져가고 싶었지만, 내놓을 음식이 다 떨어져 버렸어요. 아침밥상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이제 다른 즐겁게 쓸 거리를 찾아보려고요. 아마 지금의 제 상황인 은퇴와 은퇴한 이후의 생활에 대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 시즌 2가 될 수도 있겠고요. 어떤 이야기가 됐든 스스로 즐거우려고 합니다. 그래야 꾸준히 쓰겠죠. 다음 글에서 또 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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