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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Aug 30. 2021

내겐 필요 없는 편리함

<작당모의(作黨謨議) 6차 문제(文題) : 달력>

   모니터 옆의 탁상달력이 한 해의 마지막, 12월임을 알리고 있었다. 슬슬 다음 해의 달력을 준비할 때다. 인터넷으로 탁상달력을 검색하고, 하루의 일정을 넣기에 충분한 칸을 가진, 회사에서 쓰기에 너무 화려하지 않은 탁상 달력을 찾았다. 5개를 구매하면 택배비가 무료였다. 잠깐 고민하다 팀 단톡방에 탁상달력의 링크와 메시지를 던졌다.

   "탁상달력 공동 구매하실 분."

   20명 가까이 되는 단톡방은 한동안 조용했다. 다들 일하느라 바쁜 건지. 카톡창을 보며 기다리는데 메시지 하나가 울렸다.

   "구글 캘린더 안 쓰세요?"

   아니. 안 쓰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탁상달력이 필요 없는 건 아니지 않나.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살펴봤다. 자리에 탁상달력이 놓인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구글 캘린더를 쓰지 않느냐는 카톡 이후로 탁상달력을 함께 사겠다는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회사의 업무든 개인적인 일이든 기억해놓아야 할 일정이 생기면 탁상달력에 적었다. 일정이 담긴 탁상달력을 늘 모니터 옆,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날짜 칸이 일정으로 빼곡해지면 내가 바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휴가 같은, 빨리 왔으면 하는 날들을 그때까지 남아있는 날짜 칸 수를 세며 시간을 가늠했다. 프로젝트 완료일이 적힌 칸에 가까워질수록 조급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나고 새로운 달을 맞이하기 위해 달력 한 장을 넘길 때의 두근거림이 좋았다. 한 달을 또 이렇게 살았구나. 다시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는구나. 사람들은 이 두근거림을 모르는 건가.


   퇴근 후, 탁상달력을 쓰지 않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난 구글 캘린더 쓰는데? 왜?"

   "너도 그래? 아니, 탁상달력 살 때 혹시 같이 살 사람이 있나 물었었는데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길래."

   "당신 구글 캘린더 안 써? 한번 써봐. 일정 관리하는 게 엄청 편해."

   아내도 구글 캘린더 이야기를 했다. 나만 탁상달력을 쓰고 있었나. 일 잘하는 사람들은 다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관리했었나. 그래서 평소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어려웠나 보다. 첨단 IT업계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사람이 아직도 탁상달력이라니.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구글 캘린더를 써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작은 칸의 날짜에 일정을 적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일정을 다시 보려면, 스마트폰을 켜고, 캘린더 앱을 실행하고, 작은 칸들 속에서 원하는 날짜를 선택하고 나서야 상세한 일정을 볼 수 있었다. 모니터 옆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한 달 동안의 모든 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탁상달력과는 달랐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숫자의 나열, 그 숫자들은 머릿속에서 한 달만큼의 시간을 그리지 못했다.


   이따금씩 써 보던 구글 캘린더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일정이 다가올 때마다 수시로 울어대던 알람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일정의 알람이야 꺼 두면 되지만, 회의 일정 같은, 업무로 오는 알람을 끌 수는 없었다.

   ‘너 한 시간 후에 회의인 거 잊지 않았지?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 알아 둬.’

옆에서 감시하며 채근하는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에 깔려있던 구글 캘린더를 지웠다. 일정 관리 정도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어.




   작년 10월, 신호대기로 서 있던 우리 차의 옆을 유치원 버스가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우리 쪽도 유치원 버스 쪽도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한 사람 좌석만큼 옆이 움푹 안으로 패인 차를 다시 살릴 수가 없었다. 결혼 전부터 아내가 몰던 차였고, 앞으로 10년을 더 타겠다던 차였다. 잔존가치를 따진 거라며 보험회사에서 제시한 차의 가격은 300만 원이었다. 억울했다. 연식이 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조용하게 달리는 힘이 좋았고, 지금껏 별다른 사고 없이 깨끗했었다. 사고 한 달 전, 60만 원을 들여 앞 뒤 타이어를 모두 교체했었고, 그러면서 엔진오일도 새로 넣었었다. 보험회사는 오로지 차의 연식만으로 차의 가격을 정했다.

   "난 그 차를 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고작 300만 원을 받고 판 것처럼 돼버렸잖아."

   이해가 되지 않는 보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20년을 탈 새로운 차를 사야 했다. 구입한 차는 올해 새로 나온 모델의 차였다. 10년 만에 차를 산 만큼, 10년 동안 차곡차곡 발전하며 쌓인 새로운 기능들이 있었다. 스마트 키를 지니고 차에 다가가기만 하면 차의 잠금이 스스로 풀렸고, 목적지에 도착해 차 문을 닫고 나오기만 하면 저절로 차 문이 잠겼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시키지도 않은 와이퍼가 스스로 빗물을 쓸었고, 가로등이 없는 깜깜한 길로 접어들 때면 내가 어둠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상향등을 켰다. 10년어치의 편리한 기능들이 신기했다.


   신기함은 한 달이 지나자 불편함으로 변했다. 가늘게 내리는 비에도 와이퍼는 온 힘을 다해서 빗물을 닦았다. 빗줄기가 조금만 세진다 싶으면 와이퍼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며 성깔을 부렸다.

   "얘 왜 이렇게 화났지?"

   빗물이 어느 정도 창을 적셨을 때 한 번씩만 닦아내도 될 텐데 창에 맺힌 빗물 몇 방울도 용납하지 않았다. 적당히를 몰랐다.


   어두운 길에서 켜지는 상향등은 좋았다. 바닥만 비추던 불빛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밝혀주니 운전이 편했다. 멀리 맞은편에서 오는 차 한 대가 보였다. 맞은편 운전자의 눈을 향하고 있는 상향등을 꺼야 했다. 하지만 앞에서 오는 차를 감지한 후 상향등이 꺼지기까지의 반응이 너무 느렸다. 눈부심을 느꼈을 운전자에게 미안했다.


   차를 탈 생각이 아니라면 차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근처에 가기만 하면 금세 눈치를 채고는 잠금을 풀고 앞 뒤 등을 번쩍이며 아는 체를 했다.

   "아니야. 아니야. 너 부른 거 아니야."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는데 내가 예민해서인지 그게 잘 안되었다. 나 만큼이나 예민한 녀석이 다시 잠들기를 바라며 몇 걸음 물러서야 했다.


   없더라도 상관이 없는 기능들이었다. 모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려면 제대로나 할 것이지.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기능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차 문 정도는 나 스스로 잠글 수 있고, 와이퍼나 상향등을 켜고 끄는 게 힘든 일도 아닌데  왜 그런 역할들까지 차에게 맡긴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겐 필요 없는 편리함을 넣으면서 차 가격은 얼마나 올린 걸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아침에 먼저 세수를 하고 나올 때면 아내는 내 칫솔에 치약을 짜 놓았었다. 내가 짜지 않은 치약을 보는 게 낯설었다. 치약을 짜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식사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가면 아내는 거실에서 하던 일을 내려놓고 나를 따라 부엌으로 왔다. 음식 만드는 건 내가 하기로 했으니, 넌 너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기어이 무언가를 도와주려 했다.

   "그럼 옆에서 춤이라도 추면서 응원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내도 그러길 바랐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내 도움을 기대하지 마."

   아내는 이 말을 꽤나 서운해했었지만, 이제 머릿속으로는 이해하는 듯하다. 나에게 먼저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한 번씩 내가 돕겠다며 나설 때 아내의 표정이 환해지는 걸 보면 이해는 머리까지 일뿐, 마음속까지 납득한 것 같지는 않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지금, 아내는 더 이상 내 칫솔에 치약을 짜 놓지 않고, 본인의 할 일이 있을 땐 부엌으로 오지 않는다. 각자의 할 일을 각자 알아서 하는 건 편안하다. 어쩌다 정말 할 일이 없을 때엔 슬며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부엌으로 와서는 춤이라 주장하는 응원의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나 역시 도움에 인색했던 마음을 조금은 풀었다.

   "내일 친구랑 약속이라고 달력에 적혀있던데 차로 데려다줄까? 날씨 덥잖아."

   말을 듣자마자 아내는 혹시라도 내 마음이 변할까 친구와의 약속이 쓰여있는 날짜 칸에 서둘러 무언가를 적는다.

   ‘남편이 델따줌’


   잠자리에 들기 전 먼저 씻은 아내는 내가 씻고 나올 때까지 거실에서 나를 기다린다. 졸린 눈으로 꾸벅거리는 날에도 먼저 침대에 눕는 법이 없다. 재워달라는 의미이다. 아니 그렇게 졸리면 먼저 들어가 누우면 될걸. 아내의 손을 붙들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다. 언젠가부터 자기 전 매일 하는 의식이다. 아내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제는 나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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