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Sep 02. 2021

달력이 있던 자리

 < 작당모의(作黨謨議) 6차 문제(文題) : 달력 >

  집집마다 벽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쉽게 머무르는 자리, 그 어디쯤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거실 한 편에도, 각자의 방에도 달력은 시계와 함께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1년 중의 어느 날인지, 하루 중의 언제쯤인지, 벽에 걸려있던 달력과 시계를 보며 가늠했고 시간은 나의 시선과 함께 째깍째깍 흘러갔다.


  우리 집 달력은 새해 첫날, 일제히 갈아 끼워졌다. 연말부터 회사, 상점, 은행, 종교단체 등에서 하나둘씩 나누어준 달력들을 쫙 펼쳐 놓고 자기 방에 걸어놓을 달력을 골랐다. 숫자만 적혀 있는 달력에 호불호가 따로 있을게 무어냐 코웃음 칠 수 있겠지만 각자의 취향은 확실했다. 달력의 한 면에는 그림이 인쇄돼 있으니 그림도 좋아하는 것이 달랐고 다른 한 면의 숫자판도 서체가 다르고 표시된 달 수가 다르니 그것 역시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고르는 달력이 겹치면 가위바위보로 정해 가졌다.


  어렸을 때는 알록달록 화려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담긴 달력이 마음에 들었다. 사계절 변화하는 우리나라의 산천초목 사진도 멋있었지만 외국의 자연과 도시의 모습은 꿈처럼 아름답고 신기해 보였다. 판화 수묵화 수채화 등 명화에 잠언이나 시편, 명언의 한 구절, 시의 한 구절이 쓰여있는 것도 간간히 읽고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이기 안성맞춤이었다.


7~90년대까지 유행했던 여자연예인들의 주류 광고가 인쇄된 달력(좌, 중), 인기 있었던 만화그림의 달력(우)


  여러 달력 중 그림도 없고 숫자판만 인쇄된 달력은 항상 거실의 한 벽면에 걸렸다. 거실 달력은 식구들의 공동소유의 느낌이 강했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가족의 생일, 친척의 경조사)가 기록되었으며 가족 구성원의 일정(시험기간, 방학, 개학, 소풍, 운동회), 각종 공과금과 공납금 내는 날, 심지어 엄마의 곗날까지 빼곡히 동그라미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달력이 걸려 있는 못에는 아예 빨간 색연필을 묶어 달아놓기까지 했다. 그때그때 기억할 것은 빠트리지 말고 기록하라는 점잖은 의미보다는 필기도구 찾는다고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지 말라는 엄포의 의미가 컸다.


  내 방의 달력은 1년 365일, 벽에 걸려만 있었다. 동그라미가 쳐진 곳도 없었고 메모한 흔적도 없이 때가 되면 한 장씩 떼어지기만 했다. 묵언 수행하는 스님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있었다. 있어 딱히 쓸모 있지는 않았지만 없으면 벽을 훑는 시선, 머물 곳 없어 허전해지는 그 무엇이었다. 가끔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변화를 느끼며 달력의 숫자를 쳐다보면 계절이 함께 읽히기도 했고 시간의 흐름이 읽히기도 했다. 숫자들은 단순히 셈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11의 숫자가 슬프기도 했고 어느 날은 23의 숫자가 웃음을 주기도 했다. 숫자로 표시된 그날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기도 했다.

  

화장실 입구에 걸린 일력... 어떤 의미로 이 곳에  걸어놓았을까?   요즘, 레트로 감성을 타고 찢는 일력 수요가 늘었다고 한다.


  달력은 그렇게 집 안의 어느 벽면에 걸려 시선과 관심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옛날 옛날에는, 의외의 장소에 걸려 있기도 했다. 시골에서는 열에 아홉 집이 그랬고 1977년 부산으로 이사 온 한옥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외의 장소는 바로, 화장실이었는데 굳이 화장실이 아니라면 현관 출입문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혹은 화장실 입구에 걸려 있었다. 달력이라고 다 같은 달력이 아니었다. 대학노트 보다 좀 더 큰 사이즈에 상호와 숫자도 큼지막하게 박힌 일력(日曆)이어야만 했다. 그날의 날짜, 요일, 일진(日辰) 따위를 각각 한 장에 적어 매일 한 장씩 떼거나 젖혀 보도록 만든  달력 말이다.


  화장실에 일력이 걸려있어야 하는 이유는 여럿 있었다. 보드라운 휴지를 둘둘 말아서 사용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당시 일력으로 만들었던 종이는 습자지처럼 얇아 휴지 대용으로 사용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화장실에 걸어놓은 휴지가 똑 떨어졌을 때 훌륭한 대체재 역할도 했다. 매일매일 뜯어 휴지로 버려지느니 어떻게든 활용하자는 어르신들의 생각이 반영된 이유도 물론 있었다.


  달력이 달력의 본디 역할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은 이뿐이 아니다. 달력은 특히 명절을 앞두고 주가가 급상승했다. 기름종이 역할이었다. 미처 벽에 걸리지 못한 달력이 요긴하게 꺼내졌고 그마저 모자라면 방에 걸린 달력이 미리 찢기기도 했다.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의 책 꺼풀(책 커버) 싸기에 달력 종이만 한 게 없었다. 일력의 얇은 낱장은 대청소날, 창틀을 닦거나 먼지 앉은 유리창을 애벌 닦기에도 아주 좋았다. 달력 종이로 만든 종이비행기는 적당히 빳빳해서 잘도 날았고 딱지는 골목 여기저기서 연신 공중돌기 중이었다. 할머니가 대나무살을 발라 만들어주신 방패연은 한지가 최고였으나 다음으로 일력을 뜯어 쓰기도 했다.


  그나마 달력을 이렇게 저렇게 요긴하게 쓸 수 있었던 건 매년 연말에 달력을 선물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회사에서는 상호가 새겨진 홍보 달력을 제작해 직원과 거래처에 일일이 나누어 주었으니까.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방 자치단체장들도 표심잡기용 달력을 배포할 때였다. 한 때는 은행이나 새마을금고 투자신탁 등 금융권 달력을 처음으로 받게 되면 그 해에 돈복이 들어온다는 말이 돌았다. 다른 달력이 손에 들어오기 전에 은행 달력을 먼저 가져야 했다. 안달을 하며 일부러 은행에 찾아가 줄을 서기도 했다.


  다리품을 팔아 은행에서 받은 귀한 달력은 내가 쓸 것만 남기고 또 이웃에게 선물했다. 달력을 선물한다는 것은, ‘당신의 1년, 365일이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며 가정의 행복과 행운을 기원한다’는 기원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요즘은 달력을 선물하는 것이 귀해졌다. 경기 침체로 달력 인쇄비라도 줄일 요량으로 제작 자체를 하지 않게 된 것인데, 달력이 핸드폰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굳이 종이 달력을 걸어두거나 책상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종이책을 읽지 않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아날로그 감성인 나 역시 벽에 거는 달력은 일찌감치 아웃시켰고 탁상 달력마저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둔 채 찬밥 신세를 만들어 놓았다. ‘이 즈음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분이 싸~해질 때 한 번씩 꺼내 확인하는 정도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색칠하고 돼지 꼬랑지 표시하는 맛과 재미를 알기에 연말이면 탁상 달력을 놓고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듯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다. 한 해를 그려보는 의식이다. 색칠 이하는 생략한다. 어른이니까 우아한 동그라미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최근, 이런 레트로 감성의 부활로 개성 넘치는 달력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력 제작이 늘고 있고 달력 표지의 문구를 개인이 정해 주문할 수도 있다. 표지 디자인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많아 출력해서 수작업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달력에 들어가는 사진 역시 개인 취향에 맞는 사진을 파일로 보내면 하나뿐인 달력을 받아 벽에 걸어놓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아이들 어렸을 때, 아이 사진으로 달력을 주문 제작한 적이 있었으니까. 개성의 시대가 아닌가. 달력에도 개성이 묻어나는 시대가 되었다.


  좋은 취지를 살린 달력이 인상적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2014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서 화상 환자 치료비 지원을 목적으로 ‘몸짱 소방관 희망 나눔 달력'을 만들어 판매를 시작한 것이 그것인데 2019년까지 5만 5,471부, 5억 3,580만 원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한 사람당 평균 4~5백만 원이 드는 중증화상환자 130명을 치료하는데 쓰였다니 몸짱 소방관의 모습을 보는 기쁨과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후일담까지 덤으로 얻는 기쁨 두 배의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달력 표지에 마음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좌), 몸짱 소방관 희망나눔달력(중), 국립국악원 제공 달력 무료 배경화면(우)


  사물이 있었던 자리의 풍경이란 것이 있다. 지금은 없지만 눈을 지그시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그 사람과 함께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풍경은 풍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함께 깃들어 있다. 풍금이 있던 자리, 발구름 재봉틀이 놓였던 자리, 붉은 해가 떠오르던 달력이 걸려 있던 자리... 사물이 있던 그 자리에 ‘엄마, 가족, 선생님, 친구, 연인...’ 등 사람의 온기와 마음이 담기면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분명 전해진다고 믿는다.


  그것은 분명한 것이다.

지난밤, 달력이 걸렸을 법한 자리를 은근히 바라보았을 때, 부스럭부스럭 두런두런 옛 소리들이 시나브로 살아나고 또 살아나는 것을 들었기에 아는 것이다.




4 4,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매거진의 이전글 내겐 필요 없는 편리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