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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23. 2021

명왕성의 변(辯)

 < 작당모의(作黨謨議) 5차 문제(文題) : 명왕성 >

  예전에도 나는 독립적이었고 지금도 독립적이며 앞으로도 독립적일 것이다.


  내가 자기소개도 없이 성급히 결론부터 강조하여 언급한 것은, 지구인에게는 내가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어 의지할 데 없고 외롭고 불안한 처지로 평가되고 있기에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함이며, 내 이름을  '134340'으로 정정해 부름으로써 무기수처럼 우주 한 구석으로 열외 시켜버렸기 때문이지만 그런 일 따위에는 절대 꿈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 기인한다.


  내 이름은 플루토(명왕성), 저승 세계의 지배자(하데스 Hades)의 이름을 따서 플루토(Pluto)라 한때 불렸다. 1930년 지구인에게 발견된 이후, 영국의 베네티아 버니라는 11세 소녀가 제안한 이름을 사용하여 왔는데, 나는 정확한 이유를 들어보지 못해 알지 못한다. 어차피 이름이라는 것은 짓는 사람의 뜻에 따라 불리어지는 것이라 ‘왜?’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인간들도 자기 이름은 부모나 혹은 작명소, 철학원에서 지어 불리게 되는 것이니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붙여져 불렸던 이름에 하필 저승과 관련된 이름이 붙었을까 불만은 있지만 그러려니 여기며 지내왔다. 한편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인 것은 ‘함부로 할 대상은 아니구나’라는 인간의 경외와 신비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보면 손해날 것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개명도 많이 하는 추세라 마음만 먹으면 내 성에 차는 이름으로 바꾸는 건 쉬운 일이겠지만 어느 때는 "태양계에 오신 걸 열렬히 환영합니다" 하면서 플루토, 명왕성으로 부르다가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왜행성 134340’으로 명명해 버리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이름 따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봐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현상에 속을 일이 뭐 있나, 본질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명왕성으로 불리든 플루토로 불리든 134340으로 불리든 '나'라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의 의미는 퇴색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독립적인 존재였다. 나를 위해 쉼 없이 움직이고 있고 움직임을 멈춰본 적이 없다. 하루는 어느 행성보다 일찍 시작해서 늦게 끝난다. 하루 153시간 동안 일을 한다. 태양을 도는 공전 주기는 약 248년, 그러니까 나는 공전 궤도면으로부터 57° 삐딱하게 기울어진 상태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움직임을 멈춘다면 한 없이 차가워져서 표면온도 평균 영하 229도의 나는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어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쉼 없이 움직이고 별을 가꾼 덕분에 산과 계곡 평원 등을 계속 만들어가고 가꾸어 나가고 있다.


  물론 지구인들이 보기에는 아주 느릴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우공이 산을 옮기듯(愚公移山)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지켜내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라서 어디 한 군데 폭발할지도 모를 지구와는 좀 다른 행보이다. 나는 오히려 지구가 걱정이 된다. 때로는 우행(牛行)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인데 말이다.


명왕성과 카론을 비롯한 5개의 위성들


  게다가 나는 카론(Charon), 히드라(Hydra), 닉스(Nix), 스틱스(Styx), 케베로스(Keberos) 등 다섯 개의 위성과 더불어 조직을 운영해 오고 있다. 카론은 나의 1/2의 크기로, 위성으로서는 규모가 커서 지구인들은 '명왕성-카론을 이중 행성(double-planet)'으로 보지만 적당한 거리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다. 힘은 조화롭게 배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어느 하나의 무게와 크기가 커져버리거나 권한과 권력이 치중된다면 독재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이것이 나와 나의 별들과의 동맹의 근본이며 우주론이자 세계관이다.


  내가 이렇게 뜬금없이 변호사의 입장이 되어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8월 24일, 내일이 바로 나의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나 있고 들떠 있다. 한국에서도 1945년 8월 15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고 알고 있다. 해마다 그날을 기념하고 경축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고초를 겪은 우국지사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고 들었다. 좋은 전통이라 사료되는 바, 나 역시 해마다 8월 24일을 기념하려는 것이다. 독립기념일 경축사 초고를 미리 적어본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나의 독립일은 2006년 8월 24일이다. 

나는, 1930년부터 태양계의 9번째 행성, 즉 명왕성(冥王星)으로 식민살이를 시작했으며 2006년 국제 천문 연맹(IAU)의 행성 분류법이 바뀜에 따라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분류되며 독립했다. 1930년부터 시작된 76년간의 예속의 삶이었다. 한국의 식민 생활과 비교하자면, 외교권과 사법권을 박탈당하고 언어와 문화가 말살되고 국민이 예속당하는 극강의 식민살이는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태양계 기준에 부합한다며 끄트머리 말단에 이름 하나 덜렁 얹어 놓더니 어느 날부터 기준에 맞지 않네, 삐딱하네 하며 트집을 잡는 통에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알아서 납작납작 엎드리며 머리를 조아리라는 얘긴지 조공을 갖다 바치며 로비라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독립을 찾기 위해서는 나서야 했다. 투쟁과 쟁취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독립이 아니던가. 자유에는 피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던가. 분연히 일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얼버무리고 고민하고 주저하는 사이 ‘독립’은 이루어졌으나 허울뿐이었다. 퇴출이었다.


  자주적인 독립을 했어야 했다. 자유와 독립은 스스로 쟁취해서 얻어내야 완전한 것이며 독립 후의 수습과 마무리도 순탄할 것인데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은 한국이 완전한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잔재 청산을 깨끗이 완수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나 역시 2006년 이후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참아야 했다. 퇴출을 결정하기 전, 도마 위에 올려져 난도질당한 것을 생각하면 분하고 또 원통할 뿐이다. 나는 변한 게 없는데, 나는 가만히 있는데, 제3자가 내 거취를 쥐락펴락하며 결정하다니... 있을 수 없는 잔악한 일이었다.



  독립은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소극적인 독립과 적극적인 독립이 그것이다. 소극적인 독립은  '~으로 부터의 독립'을 말하고 적극적인 독립은 '~을 하기 위한' 독립을 의미한다. 나는 고작 태양계로부터 소극적 독립을 이뤘을 뿐이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무엇을 이루어 내겠다는 적극적인 포부는 아직 없다. 설왕설래하던 나에 대한 관심과 험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미 자유롭다’고 한다. 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자발적인 활동으로 부자유로운 우주 사회를 극복해 왔기 때문이다.


  소극적 자유만으로 자유의 본질을 통찰할 수 없으며, 현실성과는 거리감이 상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소극적 자유 개념이 우선시 되기는 하지만, 적극적 자유 개념이 갖는 현실과의 착종 관계를 살피면 적극적 자유 개념도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 내 마음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독립적이며 자유롭게 살아갈 계획이다. 우리가 듣고 배우고  익히는 지식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되는지, 내가 알고 있던 것만 진리라고 주장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름 충분히 경험했고 신체적 억압은 없었으나 정신적으로 조금 피곤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의 방식대로, 지금껏 살아온대로 꿋꿋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살아갈 자유, 선택할 자유, 거부할 자유가 있는 독립적인 별이기 때문이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하노라...” 로 시작하는 기미독립선언서를 찬찬히 음미보며 태양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 16주년을 맞은 감회를 차가웁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전하노니, 이를 경탄하는 자, 축배를 들라!

건배!!!





4 4,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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