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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Aug 19. 2021

명왕성은 여전히 태양을 돈다.

<작당모의(作黨謨議) 5차 문제(文題) : 명왕성>

명왕성은 태양의 가장자리를 도는 9번째 행성이었다.


   은퇴를 하기 전, 우리가 풀어놓았던 은퇴 계획을 귀 담아 듣는 사람은 드물었다. 은퇴? 야. 나도 하고 싶다. 사람들은 이루어 질리는 없지만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어떤 막연한 꿈을 보듯 우리의 은퇴를 대했다. 꿈을 현실에 대입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내와 내가 은퇴를 하고 나서야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의 궁금증에 답을 하는 건 주로 아내다. 처음엔 나도 몇 마디 보탰지만, 이제는 아내가 풀어놓는 은퇴이야기를 옆에서 듣기만 한다. 아내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 절반이 나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흥미롭다. 이미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매번 아내가 펼쳐내는 은퇴 이야기에 빠져든다. 세계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아내를 흔들면서 시작된 아내의 은퇴는 희망을 바탕에 두었다. 준비의 과정도, 그 과정에서 수없이 부딪혔던 난관에도 아내는 희망을 펼쳤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아내의 표정은 밝다. 불확실한 미래의 걱정보다는 지금 현재, 희망을 이야기한다. 듣는 사람들도 아내의 밝은 표정이 주는 지금의 행복을 먼저 느낀다. 자신과 가까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을 다시 산다면 아홉 번째 인생 즈음엔 나도 이렇게 해볼까 하는 이야기 정도로는 여겨 준다.


명왕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걸음은 더뎠다. 다른 행성들이 이미 태양을 몇 바퀴나 도는 동안에도 명왕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명왕성은 한없이 느렸다.


   아내의 은퇴가 희망이었다면, 나에게 은퇴의 의미는 도피였다. 은퇴를 계획했다기보다는 퇴사가 절실했다. 이직 후 은퇴를 하기까지 12년을 다녔던 회사는 만만하지 않았다. 이직한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낯설었다. 지금껏 경력을 쌓아왔던 업무와 달랐다.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하는 나에게, 이쪽 분야가 앞으로 전망도 좋고, 평생 일할 거리를 줄 거라며 팀장은 자신 있게 말했다.


   첫 해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만들어 놓은 결과가 부족했다.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팀장의 눈에 띄어 부족했던 결과를 어느 정도 무마했고, 그 때문인지 최악의 평가를 비껴갔다. 첫 1년은 적응을 위한 시간이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한 발 앞서있는 동료들을 따라잡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들과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졌다. 따라잡았다 싶어 돌아보면 동료들은 두어 발 앞에 있었다.


   IT업계에서 개발자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고여있지 않았다. 머물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 다녔다. 적응보다 변화가 빨랐다.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제야 그 흐름에 몸을 맡길만하다고 여겨지면 어느새 또 다른 물결이 나타났다. 따라가려는 걸음은 더뎠다. 나만 혼자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발버둥은 한없이 느렸다.


태양빛은 먼길을 달리면서 흩어지고 희석됐다. 그렇게 다다른 태양빛은 식어버린 행성을 달구지 못했다. 태양의 먼 바깥에서 얼어붙은 명왕성은 다른 생명을 품지 못했다.


   위로와 격려는 내게 힘이 되지 않았다. 실패나 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주로 건네지는 위로와 격려를 외면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결과만이 필요했다. 평가 시즌이 오면 전보다 나은 평가를 기대했다. 올해는 성과도 좀 있었고, 열심인 모습도 보였잖아. 내가 생각해도 작년보다 훨씬 나았어.


   평가는 언제나 냉정했다. 평가는 내 기대와는 달리 작년의 나와 비교하지 않았다. 나의 비교대상은 앞서있던 동료였다. 그들을 앞설 수는 없었다. 평가의 온기가 나에게까지 오기엔 서 있는 자리가 너무 멀었다. 평가 결과를 볼 때마다 난 얼어붙었다. 희망을 품지 못했다.


   나보다 연차가 높았던 동료들처럼 확실한 내 것이 없었고, 어린 동료들처럼 변화에 민첩하지도 못했다. 위에서 짓눌러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색한 웃음으로 넘겨야 했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할 수 없이 버티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싸이의 ‘아버지’를 들을 때마다 떠오른 건 아버지가 아니라 나였다. 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스스로가 짠했다. 난 어찌 이리 살고 있을까.


행성에 걸맞은 충분한 크기를 갖지 못했고, 비슷한 천체들이 새롭게 발견되면서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잃었다.


   무작정 도망칠 수만은 없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무서웠다. 전쟁터를 벗어나면서도 지옥을 피하려면 누리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전쟁터에 살면서 받았던 보상으로 그리던 넉넉한 미래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은퇴는 내가 먼저 꺼냈지만 계획은 아내가 세웠다. 아내는 10년, 20년 후의 삶을 설계했다. 아내의 계획 속, 한 달 생활비는 보잘것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쓰던 생활비를 절반이나 깎아냈다. 그마저도 바로 실행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반이나 덜어낸 삶조차 지금 가진 것으로는 불가능했다. 아내가 세운 계획을 뒷받침할 충분한 돈을 모을 때까지는 몇 년이 더 필요했다. 집을 사느라 지었던 대출을 다 갚고, 아내가 최소한이라고 했던 금액만큼 모았을 때가 되어서야, 회사원이라는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도피로 시작된 나의 은퇴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냐면 말이야. 노력을 쏟아부어도 나아지는 게 보이지 않던 좌절감이 어땠냐면 말이야.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어땠냐면 말이야. 힘들었던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즐겁지 않다.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아내의 은퇴 이야기는 재미있다. 이루어놓은 것들을 놓아버리고 스스로 원하는 두 번째 삶을 선택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를 했냐면 말이야. 회사를 버리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게 뭐였냐면 말이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거냐면 말이야. 과거에 포기한 것들보다 앞으로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옆에서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조차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이 궁금해진다. 남들보다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 아내가 바라보던 희망을 이제야 내게도 입힌다.


명왕성은 여전히 태양을 돈다. 온기 없는 태양빛을 등대 삼아, 느리지만 끈기 있게 발걸음을 옮긴다. 나아가는 방향 역시 다른 행성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먼길이어서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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