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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Oct 28. 2021

작가의 남편으로 산다는 것.


출간 계약서를 쓴 이후, 아내는 책으로 나온 다른 에세이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책들은 보통 몇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지, 각 챕터는 몇 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지, 한 꼭지당 어느 정도의 글자 수가 필요한지. 그렇게 완성된 책의 전체 글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

‘정했어. 다섯 개 챕터에 40 꼭지, 글자 수는 10만 자.’

아내는 책을 내기 위해 써야 할 초고의 분량을 10만 자로 정했다.

 ‘다른 에세이들 보니 9만 자에서 10만 자 정도 되더라.’


주변의 지인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은퇴이야기를 혹시 책으로 읽는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궁금할지를 물었다. 지인들의 대답들이 하나 둘 모였다. 은퇴자금은 어떻게 모았는지, 은퇴를 준비하면서 두려웠던 건 없는지,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아내는 지인들의 궁금한 점들을 모아 부족했던 뼈대를 채웠다. 처음 써보는 책이고, 책을 쓰는 노하우를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거침이 없었다. 어느 정도 책의 윤곽이 정해지자 아내는 본격적으로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두 달간 지냈던 제주에서 아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테이블에 앉았고, 아침 달리기를 다녀와서도 바로 글을 썼다. 내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느라, 뉴스를 읽느라, 혹은 오후의 노곤함에 살짝 낮잠을 자느라 침대에 누워 뒹굴거려도 아내는 앉아있는 의자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라고, 11시가 훌쩍 넘었다고 알려주어도 아내는 글을 쓰는 아이패드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거 쓰던 거만 마저 쓰고. 금방 끝나. 당신 먼저 씻어.’

아내는 머릿속의 생각들이 넘쳐 난다는 듯 밖으로 쏟아냈다. 끊어지지 않는, 계속 이어지는 자판소리가 신기했다. 쓰면서 몇 번이고, 한참 동안이나 손이 멈추는 나의 글쓰기와는 달랐다. 아내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지 6주 만에 계획했던 10만 자를 써냈다.




‘일단 어느 정도 마무리했는데. 한번 읽어 봐.’

아내는 6주에 걸쳐 쓴 10만 자의 원고를 나에게 내밀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기가 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아내라고 했다. 하루키는 글을 읽은 아내의 의견이 책을 더 나은 방향으로 조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도 하루키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내 책의 가늠쇠가 되어 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아내가 쓴 글을 꼼꼼히 읽었다. 작가님을 위한 내조의 첫걸음이라 생각했다. 내용을 중심으로도 읽고, 문장을 중심으로도 읽었다. 회사에서 힘들었다는 부분은 잘 안 읽히는 것 같아, 퇴직연금 부분은 설명이 좀 더 들어가면 좋겠다. 아내는 나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키는 첫 번째 독자인 아내가 글을 읽고 안 좋은 평을 하면 마음이 상한다고 했는데 아내는 내가 하는 지적에 오히려 신을 냈다.

‘아 그래? 나도 그 부분 좀 걸렸었는데. 잠깐만.’

후훗. 내 지적이 좀 날카롭지. 아내도 내 이야기를 듣고는 뜨끔 했을 거야. 아내는 내가 말한 부분에 곧바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전보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빨랐다. 밤 12시가 넘었다는 걸 알려주고 나서야 아내는 글 수정을 마치고 아이패드를 덮었다.

 

‘말했던 부분 고쳤어. 다시 한번 읽어 봐.’

하루 만에 아내는 수정된 글을 다시 내밀었다. 잘 읽히지 않았던 부분은 문장을 나누어 다듬었고, 친절하지 않았던 부분은 설명을 덧붙였다. 처음 읽었던 글보다 매끄러웠다.

‘반복되는 단어나 표현들이 좀 보이는데, 그런 쪽도 손 좀 보면 더 좋겠다.’

‘아 그래? 잠깐만.’

아내는 다시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내의 관심은 하루 종일 온통 글쓰기에 있었다. 몇 시간이고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글을 쓰는 내내 아내는 즐거워 보였다. 글을 쓰는 게 저리도 재미있을까. 하루키도 글을 쓸 때 저런 모습이었을까. 몇 번의 의견이 더 오고 갔고, 아내의 글은 점점 더 정돈되어 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퇴고를 마치고 난 후, 이 정도면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글을 아내에게 보여주었다던데, 아내는 매번 퇴고를 하지 않은 날것의 글을 그대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는 하루키와 달랐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퇴고도 이제 다 했어. 다시 한번 읽어 봐.’

아내는 퇴고를 마쳤다는 글을 다시 내게 내밀었다. 다시 읽어보라니 다시 또 읽어야 했다. 꼭지의 제목만 봐도 내용이 펼쳐졌고, 한 문장을 읽으면 다음 문장이 저절로 떠올랐다. 하루키도 처음 글을 썼을 때엔 이랬을 거야. 첫 책이었을 때엔 자존심 따위 없었겠지. 하루키의 아내도 처음엔 그런 완성되지 않은 글을 몇 번씩이나 읽었겠지. 그렇게 남편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겠지.


아내의 글을 서너 번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내가 수정한 부분이 어디 어디인지가 보였었다. 내용을 추가하기도, 혹은 잘라내기도 했다. 문단의 순서가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다섯 번을 넘어 일곱 번, 여덟 번 정도가 되자, 읽어도 도대체 어디가 변한 건지 보이지가 않았다. 분명 아내의 말로는 무언가를 고쳤다는데 그게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어때? 더 나아진 것 같지 않아?’

뿌듯해하는 아내를 보는 내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뭐가 바뀐 걸까. 어디가 더 나아진 걸까. 보이진 않았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아. 그러네. 훨씬 좋아졌네.’

내 자신 없는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바뀐 부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단어 하나가 계속 맘에 걸렸는데 딱 맞는 단어가 갑자기 떠올라서 바꿨거든. 읽는 맛이 확 다르지?’

그랬구나. 단어 하나가 바뀌었구나.


5월 초, 아내는 두 달의 기간만에 10만 자의 초고를 완성했다. 글을 써내는데 6주가 걸렸고, 그 글을 다듬고 고치는데 2주를 들였다. 아내의 초고가 완성되기까지 난 10만 자의 완성되지 않은 글을 열 번쯤 읽었고, 작가의 남편으로 산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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