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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Mar 06. 2021

클럽 하우스의 씁쓸한 뒷-맛

스피커 제안을 받았다



우연히 클럽하우스를 알았고, ‘핫-하다니까’ 초대장도 없이 무작정 가입부터 했다.

운이 좋아 승인이 됐고 (중요한 건 날 승인해준 분이 누군지 모른다. 기억이… 안 나는 분) 그때부터 알음알음 활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오디오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명상 앱 <루시드 아일랜드> 식구분들이 클하를 많이 하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 DM을 통해서 한 분이 연락을 취해왔다. 주로 섭외를 ‘하던’ 입장이었던 내가, 섭외를 ‘받아’보니까 기분이 묘했다. 심지어 브런치 작가와 방송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하니 구미가 당겼다.

다만, 나와 같은 예능 분야의 작가를 만날까 봐 걱정이 됐다. 만약 그분이 선배라면, ‘와우….’ 선뜻 하겠다고 해놓고 걱정이 앞섰다. ( 바닥이 워낙 좁아서 건너 건너 아는 사이가 되면 괜한 말이 나돈다. 대부분 긍정적인 이야기도 조롱으로 바뀌어버리는 곳이다. 클하에서  말이 어떻게 소문 날지 예상할  없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걱정을 이겼다.

참여하는 작가분들이 교양, 라디오 등 4~5명이라고 했으니 나름 분류가 되어 예능 파트가 겹칠 일은 없겠다 싶었다. 좋은 제안이었기 때문에, 내가 해온 것들을 마음껏 드러내기로 했다.


/


시간이 다가오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클하에서 편하게 말하고 참여하는 편인데, 이건 짜인 구성의 토크라 그런지 상당히 긴장됐다. 사전 질문지에 대한 대답을 미리 써놓으면서도 과연 이대로 될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지만, 잘 하고 싶어서 최대한 꼼꼼히 답하며 나를 돌아봤다.



결과적으로 토크는 좋았다.

좋은 이야기를 들었고 글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을 접했다. 브런치가 누군가에겐 이런 의미일 수도 있구나, 다들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구나. 다만, 당황스럽게 동종 예능 작가 선배님을 만났지만 (심지어 현직) 다행히 별다른 말실수 없이 잘 끝난 것 같다. 공감도 있었고 세상의 모두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도 이야기를 통해 실감했다. (다만... 스피커 분들의 정보를 사전에 물어볼 걸 후회된다. 미리 알았다면 처음부터 내가 했던 프로그램들을 말하지 않고 간을 좀 봤을 텐데)


그러나, 거기서 나는 피하고 싶었던 내 단점을 마주했다. 남아있는 찝찝함이 그걸 증명하는 것 같은데, 클하가 끝남과 동시에 글과 나의 관계성을 깨달으면서 현타가 왔다.

생각해보면 한때는, 주변의 칭찬에 힘입어 글을 (잘) 쓴다는 나에게 취해 있었다. 마음먹으면 단시간에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집중력'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글을 쓰다가 세상이 멈추는 무아지경을 경험하고, 나를 표현하는 데 겁이 없다는 것도 자랑스러웠다.

그래, 나는 나에게 취해서 글에 빠져 있었다. 애초부터 글은 수단이었을 뿐 꿈이 아니었다.



내재  자신감이 교만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를 하며 ‘, 나는 특별해라고  한번 생각했으니까. 떠올려보면 솔직하지 못했던 대답도 있었다. 흐름에 빠지고 캐릭터에 빠져서  특별한  했다.

와… 내 교만함을 대놓고 마주하니, 뒷걸음질 치고 싶은 기분이다. 심지어 플랫폼 특성상 서로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로, 무음의 반응(박수)으로 리액션하기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덤덤하게 한 말이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고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최대한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려고 포장하고 말을 다듬다가 교만이 터지는 흐름이다.


...

...

음...


사실 그 교만에 비해 대외적인 성과는 미미하다.

온전히 자기만족과 우물 안의 평가였을 뿐. 교만이라는 술에 취해 있다가 이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다. 내가 여실하게 밝혀지는 기분이랄까. 어디서는 클럽하우스가 <전문가들이 ‘아는 척’하는 플랫폼>이라는 말도 한다는데... 오늘의 나는 그 말에서 아는 척을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동안 클하하면서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분명 클럽하우스의 순기능을 느끼고 선한 영향력을 받았으나, 동시에 플랫폼의 한계를 느끼고 내 단점까지 깨닫다니. 이 무슨 딜레마인가. 시간이 갈 수록 끝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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