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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Sep 12. 2021

호의라는 이름의 폭력

"딸 같아서 그래"



늦은 밤.     


잘 돌아가던 세탁기가 말썽을 부려 급히 빨래방에 갔다. 물 먹은 빨래가 얼마나 무겁던지 길을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데, 내 시야 끝으로 등산복을 입은 한 아저씨가 훅 들어왔다.    

 

“어이쿠, 아가씨 이리 줘”     


당황스러운 그의 반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내 빨래 봉지를 잡아 들었다. 순간 나는 그의 힘에 휘청이면서, 짙은 술 냄새를 맡았다. 급 두려움을 느꼈고 엮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괜찮다고 말하며 봉지를 다시 내 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러나 그는 봉지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내 대답을 무시하고는, 다시 한번 봉지를 자기 쪽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어유~ 내 딸 같아서 그래”     


 말을 듣는 순간,  안의 뭔가가 움직였다. 두려움과 짜증이 뒤섞이고  모든 상황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내가 괜찮다는데 이건 무슨 태도지? 나는 정말 괜찮 말하며 봉지를 단호하게  쪽으로 잡아당겼으나 그의 힘은 여전했다.  한복판에서 이게  하는 짓인가. 결국 차오르던 짜증이  번에 폭발했다.     


“아저씨!!!!!”     


날 선 나의 목소리가 길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제야 아저씨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더니 나에게서 물러났다. 피곤했고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혹여나 같은 상황이 생길까, 빨래가 무거운 티를 내지 않으려 있는 힘껏 들고 이동하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과민 반응을 한 건가.


저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일 텐데. 내 아버지가 밖에서 젊은 애들에게 저런 취급을 받았다고 하면 나라도 화가 날 것 같았다. 만약 그가 진짜 호의로 나를 도운 거라면.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예민하게 주변을 대했던 걸까.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 걸까. 그런 거라면 좀 최악인데….

돌아가는 길에 아저씨가 있다면 사과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아저씨가 우리 집을 알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아저씨와 내가 부딪힌 곳은 바로 집 앞이었으니까.     


근데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지?

술김에 나오는 호의를 진짜 호의라고 할 수 있을까? 난 누구의 호의도 바라지 않았는데. 괜찮다는데 강압적인 행동으로 날 두렵게 했으니, 오히려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지, 저 사람은 원래부터 친절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행동을 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같아서 돕고 싶었다는  아들 같은 사람이 힘들게 무언가를 들고 있어도 돕겠다는 말을 했을까? 싫다는데 술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그에게 “감사합니다, ^_^”하며 그저 받아들여야 했나? 아니면, 나의 대처가 어른스럽지 못해서? 나는 그의 태도에 두려움을 느꼈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했지? 고분고분 말했을  멈추지 않던 그의 행동이 소리를 질렀을 때야 멈췄는데, 그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

.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일도, 그 직후에 내가 했던 모든 생각들도 어딘가 잘못됐다.

그의 진의를  수는 없지만 “ 같아서라는 말이 호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한 타인이 원하지 않는 강제적 호의는 자기만족을 기반에  폭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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