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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Sep 14. 2021

동심은 잔인하다

무지의 폭력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어느 날.

창밖으로 우수수, 우박이 내리듯 강한 소리와 함께 비가 쏟아졌다. 마침 그날은 미세 먼지 수치가 높았던 날이었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 산성비”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잊고 있던,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초등학생 시절.

정확히는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변할 무렵. 우리와는 달랐던, 한 친구가 있었다.

남자아이였고 피부는 색소가 빠진 듯 얼룩덜룩했다. 어떤 부분은 도화지를 붙여놓은 듯 하얀색이었고 어떤 부분은 나와 같았다. 숱이 없는 눈썹에 건조하고 색이 없던 입술도 그 아이의 외모를 더욱더 눈에 띄게 했다. 머리칼은 군데군데 빠져 있었기에 그 친구는 거의 모자를 쓰고 지냈다. 그 ‘다름’ 때문일까, 그는 늘 친구들의 호기심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한 번은 친구들이 뒷자리에 있던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머리(카락)가 없어? 어디 아파?”

“얼굴은 왜 그래?”     


궁금했던 이야기가 오가니 내 귀는 쫑긋, 그 친구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 뒤 들려온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아, 나 어릴 때 산성비를 맞아서 그래.”     


산성비? 놀란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친구를 바라봤었다.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산성비를 조심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솔직히 산성비를 맞아서 그 친구처럼 되고 싶진 않았다.     


이후 친구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의 물음에 같은 대답을 했고, 나중에는 그 친구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소문이 퍼졌다. ‘몇 반의 누구, 산성비를 맞아서 얼굴이 그렇대.’

그러다 소문은 이렇게 확대됐다. ‘산성비 맞으면 머리카락 다 빠진대. 너희 걔처럼 되기 싫으면 우산 무조건 챙겨’ 산성비에 대한 공포가 소문으로 퍼지면서 그 친구는 주변의 관심사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새삼, 그 시절의 기억이 다시 해석됐다.

이제  생각해보면  친구는 아팠던  같다. 아마 멜라닌 색소 문제도 있었을  같긴 한데정확한 병명을 모르니 추측하는  의미가 없다. 다만,  무렵 ‘어렸기 때문에’ ‘몰랐기 때문에’ ‘그냥 궁금해서행했던 질문과 행동들이 그에게 상처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무렵의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직접적으로 물어본  없어.’라고 피할 구석을 찾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순수한 척했지만 순수하지 않았고, 궁금하다 했지만 그저 가십이 필요했을 내면의 추악함이 드러난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공감과 이해가 아니라 그의 ‘다름’을 끌어올려 입과 입으로 즐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진짜 무서운 폭력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걸.     



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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