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작가는 곧 팀의 마스코트이자 도마 위의 희생양
나는 사투리를 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쓴다. 주변의 환경 탓인지 강원도, 울진, 안동, 대구 등 온갖 지역의 디테일한 억양이 섞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투리가 됐다. 나는 그런 내 말투와 억양이 좋았다. 그러니 천안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아카데미를 다니다가, 끝내 일을 시작하게 되고도 서울 말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첫 프로그램의 막내가 되자마자 내 사투리는 (외주) 제작사에서 화제가 됐다.
어느 팀에 막내가 새로 왔는데 그 친구 캐릭터가 독특하다는 호의적인 평가와 함께 낯을 안 가리는 성격이 나를 제법 눈에 띄는 존재로 만들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시작부터 어딘가의 중심에 있었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그 캐릭터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좋든 싫든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메인 언니는 내 캐릭터를 팀의 호감도를 높이는 무기로 활용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나를 도마 위에 올렸다. 어떨 땐 칭찬으로 어떨 땐 놀림으로 나를 화두에 올려 웃음이 터지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녀는 주변의 인물을 무기 삼아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내 사생활부터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실수까지 모조리 에피소드로 화두에 올렸다.
회사의 부장님을 비롯한 높은 분들을 상대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시작은 부장님의 커피 심부름이었는데, 한 두 번 까먹는 날이면 메인 언니가 앞장서서 나를 정수기 앞으로 밀었다. 그때는 그것도 하나의 일이라 생각하며 열과 성을 다해 물 양을 맞추고 커피 믹스를 섞었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막내가 곧 팀의 마스코트라는 언니의 말을 기억하며 '재밌는' 막내가 되기 위해 애썼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땐 욕받이가 되어 있었다. 높은 분들에게 하기 힘든 말, 허리를 숙여야 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막내가 말하면 잘 넘어갈 수 있으니까"가 이유였다. 짜증이 나는 건 그 계획이 매번 반쯤은 먹혀 들어갔다는 거다. 아마 그분은, 늘 그렇게 문제를 피해왔던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떠올린 캐릭터 썰은 긍정적인 편에 속한다. 이러나저러나 캐릭터가 없는 것보다는 눈에 띄는 존재가 되는 게 프리랜서 작가에겐 좋은 일이다. 아, 길게 봤을 때 그렇다는 소리다.
캐릭터가 주는 최악의 단점은 작가라는 집단의 특이성에서 드러났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 말이 현실이 되는 곳이 방송 작가라는 직군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가 팀의 대다수는 여자인데 (저마다의 방식으로 몇 년을 버텨온 선배들이니 보통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뜻) 그런 집단에서 살아남으려면 캐릭터의 특성이 질투 포인트를 건드려선 안됐다. 너무 잘하기 보다는 적당히 못해야 했고 그리 예쁘지 않아야 했으며 (이건 제대로 충족했다) 남자 피디들에게 꼬리 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과도하게 털털해야 했다. 막내의 존재가 선배의 자리를 위협해선 안됐다. 일이든 캐릭터든 그 어떤 것에서든. 소위 말해 예쁜 애 옆에 못생긴 애가 되어야 막내의 캐릭터가 장점이 될 수 있는 거였다.
그 프로그램에는 유독 언니들이 많았다.
생방송, 쇼라는 포맷에 서바이벌 구도까지 더해져 언니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다. 그 경쟁에서 등이 터진 건 나였다. 언짢은 기분의 불똥이 별안간 나를 향했다. 연차가 다른 언니들끼리 싸울 순 없었으니 만만한 막내에게 화살을 돌린 거였겠지. 그 당시의 나는 매순간이 지뢰밭이었다.
키보드 소리가 컸는지 "너 혼자 여기서 일 하냐"며 혼이 났었고 (나중에 알았는데 그 언니가 피디님들 사이에서 일 안 하는 작가로 말이 돌았다더라) 어느순간부터 내 말투에 옷차림이 촌스럽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때 들은 말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막내가 그렇게 칙칙한 옷을 입으면 팀 분위기가 엉망인 줄 알아. 좀 밝게 입어. 뭐하는 짓이니." 내가 입은 옷은 보라색의 체크 남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능한 튀지 않게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조용조용, 사투리도 고치고 죽은 듯이 살 걸. 눈에 띄는 막내는 결국 도마 위의 생선이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