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죽음의 순간
- 1 -
몇 년 전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주 예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장례식장에서 놀다가 친척들과 수다 떨며 잠들었던 기억이 전부였는데 이번엔 내가 나이가 있는 지라 자연스럽게 입관식에 따라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생이 멈춘 그곳은 서늘했다. 그는 차디찬 은색 철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온몸을 감싼 검푸른 색감은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낯설게 만들었다. 묘한 이질감. 멍했다. 오히려 살아계실 때 보다 더 희게 빛나는 머리칼과 마치 깊이 잠든 것 같은 평온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한 명 한 명 가족들이 다가가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나 또한 천천히 다가가 그 차가운 손에 내 손을 포갰는데 훅-하고 낯섦이 치고 올라왔다. 냉장고에 한참을 넣어두었다 꺼낸 돌을 만지는 기분. 한때 사람의 피부였을 그것은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죽 같았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우는 건지 갑작스러운 낯섦에 인생이 허무해져서 우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가족과 인사를 끝낸 후 할아버지의 몸은 종이를 접듯이 타의에 의해 접혔다. 아주 뻑뻑하고 불편하게, 돌을 얹은 듯한 무게감으로 한 팔 한 팔이 배 위로 접혔다. 할아버지는 수의를 입었다.
그가 가진 건 잘 짜여진 수의, 그것뿐이었다. 가족의 슬픔, 눈물, 후회 등 모든 감정은 허공에 흩어질 뿐. 형태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할아버지가 가진 건 수의 하나뿐이었다. 허무했다. 내가 소비하고 있는 생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 후 할아버지가 한 줌 뼛가루로 변했다. 이제 할아버지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사람의 흔적은 무서울 만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가 쪽 집안은 현실적인 문제로 난리가 났다. 우리 가족끼리는 그런 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죽음으로 도망친 거라고. 의심이 많아 그 어떤 자식도 믿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친 손주와 자식들 사이를 오가며 온갖 딜을 하셨던 모양이었고, 그 혼란스러운 딜은 결국 대립이 되어 불거졌다. 시끄러운 잡음이 이어졌고 우리 가족은 모든 상황에 진절머리가 나서 친가와 연락을 끊었다.
이제 나는 할아버지를 기억할 뿐 추억하진 않는다.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면 곧바로 가족 간의 대립이 연상된다. 그 더러운 기억 때문에 추억을 더 깊이 묻어두게 만든다.
이건 내가 직접적으로 겪은 첫 번째 죽음이었다.
- 2 -
길 위의 동물을 묻어주면서 울었던 적은 몇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죽은 지 몇 주가 지난 고양이를 묻어주면서 처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경험했다.
내가 겪은 두 번째 죽음이었다.
한 아이돌 그룹의 자체 콘텐츠 촬영을 위해 남해에 갔을 때였다. 남해의 골목길을 지나 해안가로 걸어가는 길이었는데 멤버들이 어딘가에 멈춰 섰다. "어머~ 쟤 왜 저러고 있어?" "자나 봐~" "귀여워!"라고 감탄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졌다. 웅성웅성. 알고 보니 그 고양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멤버들은 애도하듯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죽음을 뒤로하고 웃음이 주가 되는 촬영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몇 시간 뒤 잠시 촬영을 멈추고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곧바로 죽은 고양이를 향해 걸었다. 설명할 순 없지만 고양이에게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잠시 쉬던 도중에 얼어 죽은 건지 일명 식빵을 구운 상태로 그대로 죽어있었다. 다친 곳도 보이지 않았고 보존 상태도 좋았기에 정말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문득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죽음 후의 존재를 마주한 이 낯선 감정.
이 고양이를 어디에다 묻어줘야 할까. 주변을 돌아보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미리 땅을 파두었다. 손톱엔 흙이 끼고 옷엔 흙먼지가 달라붙는데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땅을 파고난 후 고양이를 옮길 넓은 판자를 찾았다. 적당한 판자를 골라 고양이 옆에 쭈그려 앉았다. 막상 고양이를 옮기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살짝 만져본 등이 너무 딱딱해서, 생기가 없이 새하얀 귀 안쪽이 너무 차가워서 어쩌질 못했다. 그 감각이 죽음을 상기시켰다. 그래, 이 아이는 죽었다.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데, 지나가는 할머니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거 고양이 한 마리 있제"
"벌~써 거서 죽은 지 몇 주 됐다!"
할머니들은 내게 몇 번 더 말을 걸더니 이내 하시던 일을 계속했고, 그녀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나는 다시 고양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죽은 지 몇 주가 됐다니. 인간에 대한 야속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고양이의 몸 아래로 판자를 밀어 넣었다. 한때 넘치는 생을 누렸을 그 고양이는 마치 사물 같았다. 온몸이 딱딱했다. 두려울 만큼 딱딱했다. 그 와중에 아직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나를 무너뜨렸다. 눈물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이 고양이의 짧은 생이 안타까워서, 집에 있는 나의 고양이가 생각나서, 죽음이라는 게 너무 허무해서. 한참 동안이나 고양이의 몸에 손을 대고 울고 다시 손을 떼고 울었다. 그러다 애써 고양이를 판자에 올리고 걸었다. 고양이는 구멍에 딱 맞게 들어갔다. 그들에겐 자신만의 영역이 필요한데, 그 좁은 땅 속은 완전히 그 아이의 영역이었다. 돌을 솎아내고 고운 흙만 모아 고양이를 덮었다.
또다시 실감이 났다.
잘 가. 늦게 묻어줘서 미안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끝내 공기 중으로 흩어지거나 땅에 스며드는 결말을 가진 인생. 우리는 얼마나 짧은 생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