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다섯

신음의 결과

ENTP(J)의 상상력

by 흐를일별진


새벽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이라고 하기에도 새벽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 전날 겪었던 일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미움이 넘쳐흘렀고 그 미움을 죽이기 위해 눈을 감고 생각을 눌렀다. 자연의 소리를 틀어놓고 소리에 집중하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순간과 횟수에 몰입했다. 그러나. 애를 쓸수록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미움은 그 크기를 키웠고 나중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나는 지고 있었다.


그때 자극적인 신음이 창밖 거리를 가득 채웠다. 집 주변엔 모텔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중 몇몇은 이미 허물어지고 새 원룸이 들어서고 있었던 터라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할 순 없었다. 건물로 둘러싸인 거리는 스피커가 된 것처럼 소리를 더 멀리 옮겼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한숨을 쉬며 주섬주섬 에어팟을 찾았다. 딸깍 뚜껑을 열고 에어팟 한쪽을 꺼내 끼려는데 소리가 기묘해졌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소리를 지르는 건지 하소연을 하는 건지, 웅얼웅얼 소리가 요동쳤다. 불안해졌다. 신고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켜 미는 형태의 오피스텔형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 틈에 얼굴을 들이밀고 여기저기를 살폈다. 보이는 건 없었다. 다만 우리 집 맞은편 두 개의 건물 사이 빈 곳에서 하얀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인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본 게 뭘 본 건 맞는 건가. 그 순간 소리가 멈췄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더 이상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생각에 잠겼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온갖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소리의 이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쾌락이 존재했을 거다. 다만 그 쾌락이 성에서 시작될 쾌락일지 살인의 순간 느꼈을 쾌락일지는 알 수 없었다. 오르가슴을 주체 못한 인간 본능의 소리였을까. 아니면 죽음 앞의 생을 갈구하는 절망의 소리였을까. 전자라면 해프닝으로 웃고 넘길 일이겠지만 후자라면 난 목격자 혹은 방관자가 되는 걸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내 얼굴을 본 걸까. 그래서 소리가 뚝 끊긴 걸까. 자극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자, 그전까지 내가 걱정했던 게 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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