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다섯

잘 살고 있습니다

네가 떠나고, 벌써 9월

by 흐를일별진




부산에서 지내며 가장 좋은 건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는 거다. 집의 앞뒤로 나 있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맞바람이 친다. 바람엔 각각에 위치한 산과 바다의 향이 실려 온다. 앞쪽으로는 멀리 있는 부산항의 바닷바람이 들어오고 뒤쪽으로는 풀 향기 머금은 산 바람이 들어온다. 가끔 뱃고동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 부산의 집에선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온갖 요소들로 깨닫게 된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해가 어떻게 뜨고 지는지, 밤이 어떤 색깔로 찾아오는지, 모처럼 나는 부산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다.


이제야 괜찮다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반려묘를 떠나보내고 도망치듯 떠난 서울이 더는 아쉽지 않다. 물론 일의 특성상 꾸준히 서울을 방문하고 있지만, 사실 그곳의 난 늘 이방인인 기분이었다. 서울의 거리에서 이방인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반려묘와 함께했던 작은 방이었다. 고로 반려묘가 없는 서울에서의 나는 죽을 때까지 이방인일 뿐이다.


사랑하는 내 반려묘의 이름은 대근.

길냥이로 구조됐을 땐 레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대근이는 지난 6월에 떠난 후로 단 한 번도 내 꿈에 나오지 않았다. 서운하진 않았다. 꿈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미련 없이 떠났다는 소리이고, 나 또한 모든 걸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종종 생각하긴 한다.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무엇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을까. 혹은 자유롭게 어딘가를 뛰놀고 있을까. 다시 내게 오지 않아도 좋다. 그저 어딘가에서든 행복하길 바란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이승에서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훌훌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나는 아주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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