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내 손으로 놓아버린 것

멀어진 인연들

by 흐를일별진



요즘 부쩍, 내 손으로 놓아버린 이들이 떠오른다. 나의 일부분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 누군가는 시절이었고 누군가는 순간이었으며 누군가는 꿈처럼 다가와 꿈처럼 멀어졌다. 상대의 입장에선 이유도 모른 채 내가 사라진 거지만, 내 입장에선 버티다 못해 도망친 사이도 있었다. 결국 대다수의 멀어짐은 내 의지로 일어난 일이었기에 미련도 후회도 슬픔도 내 몫이었다. 어떤 경우엔 후회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모든 감정을 깊이 묻었다. 어디에 숨겨뒀는지 나조차 잊을 만큼 꼭꼭 숨겨버렸다.


내 손으로 놓아버린 이들과의 추억 중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우리가 충동적으로 행했던 모든 낭만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차를 렌트해왔던 아이들. 우리는 그날 밤바다를 보고 새벽 동이 틀 무렵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5평 남짓한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다가 전부 잠들어버렸던 때. 우리가 함께 영화를 보면 마지막까지 깨어 있는 건 늘 나밖에 없었다. 비 오는 날의 성북동, 날아간 우산을 지켜보다 결국 비를 맞고 걸었던 우리들. 별을 보기 위해 무작정 달려갔던 강원도. 나는 아직도 그곳의 위치를 정확히 모른다. 장소보다 기억에 남는 건, 오로지 별만 보이던 어둠 속에서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누웠던 우리 셋의 감각뿐이다.


셋 혹은 넷.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한 숫자의 우리는 전부 과거가 됐다. 선을 지키지 못해서, 터져버린 감정을 어쩌지 못해서, 모른 척 하는 게 더 힘들어서, 모든 게 피곤하게 느껴져서, 더는 어떤 식으로든 힘들어지고 싶지 않아서. 온갖 이유로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을 가득 채운 우리들은 지난 인연이 되어 버렸다. 결국 남은 건 둘이라는 숫자뿐이지만,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한번도 그 아이들이 그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추억이 아련하게 남은 이유는 우리가 끝났기 때문이란 거다. 유지됐다면 더 많은 추억을 쌓았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기보단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결국에는 내 선택이었고, 설령 우리가 유지됐다 하더라도 결국 나는 또 도망쳤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감정의 선이란건 죽도록 노력해도 뜻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특히 남녀가 섞인 숫자일수록 그렇지 않은 숫자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니까. 물론 남녀가 섞여있지 않아도 셋이라는 숫자에는 외로움이 따르는 법이라 이렇든 저렇든 끝이 정해진 행복이었다.

미련이라는 감정도 결국에는 후회의 감정을 여운의 낭만이라 희석하는 포장지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보낸 시간이 꿈처럼 소중해서, 나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변함없이 빠져들고, 행복해하고 또 변함없이 돌아서면서 이미 소중해져 버린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날, 내버려 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달리 그런 경험이 많은 건, 사실 내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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