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조개껍데기를 모으는 이유

결국엔 나를 위함

by 흐를일별진




언젠가 조개껍데기를 가득 모아 왔을 때, 누군가 그랬다. 그걸 모으는 이유가 뭐냐고. 그땐 그냥 예뻐서라고 답했는데, 오늘에서야 내가 왜 그렇게 조개껍데기를 모았는지 실감했다.


별 생각 없이 창문 앞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하려던 때. 문득 한쪽에 둔 소라껍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껍데기를 집어 들고 들여다봤다. 만지작만지작. 껍데기의 표면을 느끼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노트북 너머 TV 모니터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가 웃고 있었다. 깨달았다. 내 마음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표정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그제야 알았다. 단순히 예뻐서 주웠다 생각했던 바다의 흔적은 기억이었다. 껍데기를 주울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순간의 바다는 어떤 풍경이었는지. 노력하지 않아도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작은 흔적만으로도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살릴 방법을 찾는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 자신을 위한 삶을 사니까. 간혹 내가 희생이라 생각했던 게 돌아보면 대부분이 책임이었던 경우가 많을 만큼, 삶의 주체는 나다. 다만 나로 인해 발생한 마땅한 책임, 그 몫을 다하기가 두려워 그걸 희생으로 포장할 뿐. 문제가 책임이 아닌 희생이 되는 순간, 나는 나를 향한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된다. 드디어 뭔가를 탓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생각해 보면 내가 껍데기를 모았던 건 비겁한 나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희생과 책임. 매일 들이닥치는 문제 상황에서도 좋았던 기억을 잊지 않게끔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내 행동의 결과가 아름다운 바다의 흔적일 수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겪어온 많은 일들은 결국 내 책임이지만, 모든 건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사소한 것에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나를 위해 나만의 등대를 찾아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바다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흔적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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