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소중해져서
사랑하고 싶은가. 사랑받고 싶은가.
예전의 나였다면 주저 없이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하는 쪽을 선택했을 거다. 받는 사랑의 주체는 내가 아니니, 의지로 조절이 가능한 사랑을 ‘하는’ 쪽을 선택했을 게 분명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의지와 관계없이 죽도록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향기에 예민한 나는 향으로 순간을 기억하고, 낭만에 취약한 나는 충동적인 낭만의 기억으로 행복을 담아둔다. 함께 비를 맞았고 (나를 위해 그들이 비를 맞아준 걸 안다) 추위에 떨면서도 애써 웃던 네가, 너를 걱정하면서도 날 위해 함께 달려준 너를 안다. 나는 그 모든 기억이 퇴색되지 않길 바랐고 비겁한 내가 선택한 건 늦기 전에 벗어나는 거였다.
그러나 이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묶여있었다. 처음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이것도 운명인가 생각하게 됐다.
여전히 불편한 건 불편하고 힘든 건 힘든데, 그중에서도 날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건 자꾸 사랑받고 싶어지는 마음이었다. 사랑받고 싶어지는 마음은 늪이었다. 사람을 약해지게 만드는 근원이며 눈을 멀게 만드는 병이었다. 내가 약해지지 않는 유일한 때는 혼자 있는 순간인데, 돌아가는 모든 상황이 자꾸 나를 약해지게 만들었다. 좋으면 좋아서 두렵고 싫으면 싫은 내가 싫었다. 애초에 미움이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자연 앞에 서서 내 존재를 한없이 작게 만들어버리고 나서야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어떤 사람도 없는 관계의 정적 속에서만, 내가 유일하게 강해질 수 있었다.
근데 사실 저것도 핑계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인정하기 싫은 내가 나를 약하게 만든다는 걸 알고있다. 약해진 것도 결국엔 내 선택이었다. 스스로 멀어져놓고 그들을 놓지 못했다. 사랑하는 게 좋다 외치면서 사랑받고 싶었다. 찌질한 나를 인정하기 싫어서, 모든 책임을 내가 아닌 외부로 돌리고 있었다. 그래. 인정하자면, 나는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그걸 들키고 싶지 않다. 아아 이토록이나 비겁한 마음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