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굉장히 힘들었던 날이었다. 긴 회의 시간 동안 작가로서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걸음이 무거운 날이었다. 나는 멍하니,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하루를 정리했다. 그때 문득, 내 눈에 한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이는 시종일관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하철 안을 뛰어다닌 건 아니었고 자리에 앉아 있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을 힘들어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무관심한 상태로 자신의 휴대폰만 봤다. 심심한 아이는 엄마의 팔을 툭툭 치기도 하고, 살짝 안기기도 하고, 다리를 배배 꼬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엄마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마가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을 쓱 보더니, 아이의 팔을 강하게 붙잡고 소리 내 혼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가만히 있지 못하냐. 뭐가 문제냐. 너는 왜 고작 몇 분도 못 하냐”
엄마는 아이에게 폭언을 쏟아냈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소리 내 엉엉 울지 않았고 눈물을 참으려 애쓰면서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얼마 후 나지막이 아이가 말했다.
“나는 엄마가 미워”
내 귀에 정확하게 들려온 아이의 말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텐데, “엄마가 밉다.”는 그 몇 마디의 단어만으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이의 말에는 깊은 상처가 숨겨져 있었다. 제삼자인 나조차도 그 상처가 느껴질 정도로.
사실 생각해보면 어른인 우리도 그렇다.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우리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안다. 내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느끼는 게,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일인지 알고 있다. 매 순간 우리는 관계의 상처에 노출되어 있는 거다. 하지만 어른이란 존재들은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다. 두려워지면 뒷걸음질 칠 수도 있고 같이 화를 낼 수도 있다. 또, "왜 나를 봐주지 않냐. 나는 지금 외롭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조리 있게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다. 아이들은 상황 속의 불안과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제어하지 못하고 덜어내지 못하고, 무거우면 무거운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른이 알아채지 못하는 상처는 오롯이 아이의 몫이 되는 거다. 소중한 존재가 상처 받지 않게 한 번 더 살피는 일. 나보다 작은 존재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일. 왜 우리는 어른으로서 보여야 할 그 배려를, 정작 아이들에게 행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신의 슬픈 마음을 애써 억누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아이답고 순수하게,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는 사람으로 천천히 어른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가는 길이 힘들지 않기를, 인생을 살아가며 조금은 덜 상처 받기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기를, 나는 이 순간, 아이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