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우리는 각자의 태풍 속에 산다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기

by 흐를일별진




스물아홉.

제주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지낼 때 가장 좋아했던 건 빨래를 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수분을 머금어 조금 무거워진 빨랫감을 꺼내 친구와 합을 맞춰 털고, 뜨거운 태양 아래 그 빨랫감을 너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햇살에 잘 소독된 빨랫감을 걷어 마루에 쌓아놓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잘 말린 수건에서는 포근한 향이 났다. 난 수건의 각을 잡아 예쁘게 개어놓고 위로 쌓아 올리는 걸 좋아했다. 다채로운 색의 수건을 모아놓으면 그날이 무르익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소와 빨래, 마른 빨랫감 정리까지 끝내고 나면 나는 늘 해먹에 누웠다. 그러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담당을 정하고, 이후 업무 일과가 끝나면 커다란 파라솔 하나를 뽑아 들고 바다로 향했다. 태양열에 달궈진 시멘트 바닥이 뜨겁다며 맨발로 종종걸음을 하면서. 게스트 입실 시간인 4시 전까지는 자유. 나는 지극히 한량 같은 모습으로 예쁘게 꾸민 여행객들을 보는 게 좋았다. 거주자와 이방인 사이. 묘한 낯섦이 나를 깨어있게 하는 것 같았다.

제주에서의 내 루틴은 거의 동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복에는 낭만이 있었고,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제주를 봤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던 이유는 내가 그 무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특별한 행복. 그 무렵의 제주는 두 번 다시 내 앞에 펼쳐질 일이 없을 거다. 물론 다른 형태로 나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으니 절대 동일한 행복은 없다. 그래서 가끔은 슬퍼질 때도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게 사무치게 외롭고 힘들 때도 있다.

나를 진짜 힘들게 하는 건, 이젠 내가 있을 곳을 안다는 거다. 여전히 나는 제주를 꿈꾸지만 내가 빛나는 곳은 제주가 아닌 서울임을 안다는 거다. 꿈과 현실 그 사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게 가끔 비극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따로 있다. 내가 있을 곳에 대한 장소의 판단은 섰는데, 난 아직도 내가 머물게 될 마음에 대한 용기가 없다. 한때는 내려놓는 게 쉬웠고 포기하기도 쉬웠다. 모든 게 내 탓이라 정당화하며 훌쩍 떠나버리기도 쉬웠다. 없으면 없이 살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았다. 외로움이라는 것도 선택의 ‘벌’로 정당화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중요한 건 나였기에 친구도 가족도 일도 안중에 없었다. 순간의 감정에 매몰돼 도망치기 급급했다.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자연 밖엔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마음을 두고 싶은 곳이 생겼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집, 가족,일, 친구. 그 모든 것들의 무게가 변했다. 복잡한 건 여전히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건 변함없이 미궁 속에 있지만, 이미 줘버린 마음을 거둘 순 없어서 그냥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에 비해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걱정되는 마음의 반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 마음도 내 몫이니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사람의 곁엔 그림자 같은 존재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공기나 바람, 무형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 않을까. 나를 잊어도 좋으니 그냥 이런 마음도 곁에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으면 된 거 아닐까. 있는 듯 없는 듯 묻지 않고 머무르는 친구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그대의 편이다. 나는 그대를 응원한다. 너를 믿는다. 모든 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넌 열심히 살았을 뿐이니까.


지금 나의 가장 큰 비극은 그들의 슬픔을 가져올 수 없다는 거다. 나는 제주의 행복을 품고 있으니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의 비극을 나눠 갖길 기도한다. 과분할 만큼 행복했기에, 그 행복에 대한 대가는 언제까지고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의 비극도 결국 내 몫이다. 내가 힘든 만큼 그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태풍 속으로 들어갈 거다.


이 글의 진짜 목적은 내게 제주가 그러했듯, 행복한 순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고 행복할 때를 기대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태풍 속에 산다. 이미 마주해 버린 태풍을 이겨내는 방법은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나아가는 거다. 비에 젖고 눈도 뜰 수 없을 만큼의 강한 비바람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그러다 태풍의 눈에 다다라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한숨을 돌리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 찰나의 행복을 양분 삼아 다시 비극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곳은 종착지가 아닌 기착지이기에, 더 큰 비극이 찾아올 것이며 한계를 시험하듯 태풍은 더 거세질 거다. 하지만 그 태풍에는 끝이 있다. 태풍의 끝자락엔 모두가 아는 것처럼 깨끗한 하늘이 있기에, 우리는 그 해방감을 기대하며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종착지는 죽음이다. 그 말은 곧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기착지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기착지는 잠시 들르는 곳. 결국 어떤 식으로든 모든 상황에는 끝이 있다. 찰나의 태풍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같이 가자. 같이 아프고, 같이 낫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다. 우리는 곧, 힘들었던 만큼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