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엄마와 대차게 싸웠다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일

by 흐를일별진




나에게 가족은 오랜 기둥과도 같았다. 나를 지탱하고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이유. 하늘 아래 사연 없는 사람은 없듯 우리 가족에게도 수많은 비극이 있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난 모든 걸 내려놓고 달려갔고, 영원할 것 같던 게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미친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련을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다.


시련이란 나를 시험하듯 찾아온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점점 해결 난이도가 높아진다. 이건 이겨낼 수 있을까. 저건 괜찮을 것 같니. 할 수 있다면 한 번 해봐. 솔직히 어느 순간부터는 다가올 시련이 두렵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늘 그래왔으니까.

이번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엄마의 인생이 뒤흔들리는 일이지만, 언젠간 일어나야 하는 일이었기에 이 힘듦 또한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잘 참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괜찮다고 생각한 게 괜찮지 않았다. 난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가족의 문제가 내 예민함에 힘을 보탰다. 나는 무서웠다. 깨지는 게 두렵고 변하는 게 공포스러웠다. 그 모든 상황이 날 힘들게 해서 가족이 짐처럼 느껴졌을 때가 있었다. 웃다가도 죄책감이 들고 행복한 감정이 들면 고스란히 비극이 됐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매 순간 부정적으로 변하려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미친듯이 몸을 쓰며 혼자 있으려 애쓰던 무렵, 엄마와 크게 다퉜다. 엄마는 나에게 모든 걸 쏟아냈다. 서운함, 자신의 힘듦, 힘이 되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분노. 마지막엔 울음까지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항변하려던 나도 나중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엄마의 약한 모습이 칼이 되어 나를 베고 찌르고 쑤셔댔다. 순식간에 내 몸과 마음에 물이 들어찼다. 지하철 안에서 울 순 없는 노릇이라 급히 문이 열리는 정거장에 내렸다. 다짜고짜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하필 그날따라 약도 없었기에 꾸역꾸역 울음과 숨을 삼키며 허벅지를 꼬집고 가슴을 쳤다. 사라지고 싶었다. 내 존재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화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 틀린 것만 같았다. 나도 힘든데 나도 미칠 것 같은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다 내 탓.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다.


이후, 한동안 엄마와 통화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출근길과 저녁 퇴근길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었는데 며칠 동안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더욱더 예민해졌다. 죄책감에 기반을 둔 분노가 온갖 형태로 드러났다. 혼자 있으려 노력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수시로 화가 났고 웃으면서도 화가 났다.

내 예민함을 알아챈 친구가 툭, 이유를 물었다. 나는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고 친구는 말했다. 먼저 전화하라고. 엄마가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전화하지 말란 건 엄마였다고 툴툴댔으나, 사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며칠 뒤,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엄마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다시 천천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화를 낸 건 다행이었다. 묻어두고 모른 척하는 것보다는 소리 내고 울부짖는 게 감정을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최소한 남이 아닌 나에게 화를 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와도 같았다. 엄마와의 긴 통화 이후 나는 한결 편안해졌다. 더 이상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고비를 넘긴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생각했다. 이제는 나의 오랜 기둥을 무너뜨려야겠다고. 나를 세우는 중심 기둥이 내가 아닌 가족이나 타인이 될 경우 주변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 상황에 따라 지나치게 흔들리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라서,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두되 조금 멀어져야 할 것만 같다. 나를 기둥으로 두고 소중한 이들을 마음으로 감고, 내가 그들을 지켜줄지언정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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