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의 별
동네 밖으로 나왔다. 통유리 밖 풍경이 예쁘다는 카페로 향했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카페는 좌우 양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한쪽은 창을 가득 채우는 숲 뷰 다른 한쪽은 공사 중인 도시 뷰. 어디를 보고 앉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도시가 보이는 창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해는 순식간에 넘어갔다. 어두워질수록 (낮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을 숲 쪽 창 너머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가을이 드리워진 숲이 아니라, 안경 쓴 내 얼굴뿐이었다. 다만 (외진 곳에 있는 카페라) 도시 쪽 풍경도 딱히 화려하진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집중해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며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 얼마 뒤, 도시 쪽 창가 밖으로 별이 반짝였다. 순간 뭔가 싶어 밖을 바라보니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한때 사람들을 외면하게 했을 공사장이 꼭 조명 축제 장소처럼 느껴졌다. 공사장 곳곳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반짝이는 작업 표시등이 별처럼 보였다. 죽기 직전의 붉은 별. 상상도 못했던 풍경이었다. 예뻤다.
생각했다. 어두워져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밝을 때 아름답게 여겨졌던 것이 해가 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어둠 속에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을 양면성이라 칭한다면, 그 양면성의 아이러니 때문에 행복과 불행의 균형이 유지된다고 볼 수 있었다. 영원할 것 같은 행복은 없고 끝이 없을 것 같은 불행도 없으니까. 때로는 행복 속에서 가장 큰 불행을 겪고, 지독한 불행 속에서 사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내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떠한 양면성의 아이러니에 휘말려 있는가. 너는 지금,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