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여섯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사랑이 어려운 서른일곱

by 흐를일별진



친구가 그랬다. 끼고 재는 감정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좋으면 좋은 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네게 관심이 있는데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직관적인 말 앞에서도 상대는 선뜻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상대는, 친구를 끼고 쟀던 게 아니라 본인 감정의 무게를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렸을 땐 간단했다. 좋아하는 감정에 충실했다. 순간에 집중했다. 그를 향한 마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나의 경우 순식간에 치고 오른 감정일수록 빠르게 돌진했다. 주저하지 않았고 불도저처럼 감정을 밀어붙였다. 상대가 튕겨 나가떨어질지언정 내 감정을 모른 척하진 않았다. 문제는 속도였다. 빠르고 거대한 감정일수록 깊이가 얕았기에, 쉽게 결정하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연결이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그만이었다. 정리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아니 정리해도 되는 사람이었기에 마음 가는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는 마음의 무게가 늘었다. 애정, 사랑이라는 감정에 온갖 이름의 곁가지가 꼈다. 사랑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열병과도 같은 사랑, 눈먼 사랑은 의미가 없었다. 언젠가 눈을 뜨면 보지 못했던 모든 단점이,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관계를 무너뜨릴 테니까.



좋아하는 영화
'국화꽃 향기'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처음엔 저도 열병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말 못하고, 안 하고 여기까지 왔어요⌟




깨달은 게 있다면, 좋아함과 사랑함의 가장 큰 차이는 단점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거다. 그 사람의 단점을 고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나와 다른 모습 그대로를 마음에 담을 각오를 하는 게 사랑이었다.


그러나 (사랑이나 연애는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가장 감성적인 방법이기에) 모든 걸 사랑할 자신이 생긴다 해도, 마음의 무게만큼 두려운 게 많아졌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낼 생채기가 두려워서, 차라리 내 감정을 모르는 척 하기로 결정한 때도 많았다. 매사 좋아하는 감정에 머무르면 좋으련만, 그 마음이 사랑이 될 것 같으면 어김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사랑할 각오가 되어도 사랑할 수 없었던 건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내 비겁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잖아. 좋아함이나 사랑함의 또 다른 이름은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라, 그 마음에만 충실하다면 굳이 상처받을 일은 없었다. 곁에 머물 수 있는 관계의 종류는 다양하니까. 신중하게 키운 마음은 차분하게 접으면 될 일이었다. 내가 상대의 모든걸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객기였다. 받아들이기로 한 단점을 거부하기만 하면 됐다. 그럼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제 선을 찾고, 나란히 걷고 싶던 마음은 평행선을 탔다. 닿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랑이 흐려졌다. 규정되지 않은 관계는 언제든 끝낼 수 있었다.


비겁하다 욕해도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건 선택의 결과이니 후회도 아쉬움도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나는 자기 세뇌와 정당화에 능했기에 쉽게 포기하고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건 내 방식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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